야고부-'얼굴 없는'테러

입력 2001-09-13 15:00:00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역에서 한국 강점의 수괴인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砲殺)한 안중근(安重根)의사는 문자 그대로 '영웅'이었다. 말이 그렇지 구식의 육혈포로 13m 거리의 '이토'를 정확히 3발이나 명중시킨 그 담대함과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은 그만두고라도 거사후 자신의 신분을 대한의용병 참모중장이라 밝히고 "대한독립주권의 침탈자이자 동양평화의교란자를 의용군 사령관 자격으로 총살했다"고 당당하게 진술한 것은 대한 남아의 의기를 천하에 떨친 쾌사였다. 안 의사가 이토를 겨냥했을뿐 그옆 사람에 위해가 가지않게 최선을다했다고 법정 진술한 것을 보면 그는 애국애족의 휴머니스트였던 것이다.

▲12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의 참사는 우선 그 엄청난 살상과 파괴 규모에 분노케 된다. 게다가 위협의 주체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 살상한 그 잔인성에 전율케된다. 설령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 누가, 무엇때문에 테러를 가한다고 밝히는 게 그나마 이치에 맞다. 그런데 수풀 속의 독사처럼 잔뜩 움츠린 채 숨어 들었다가 이처럼 일을벌이다니…우리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 철저한 증오감에 몸서리치게 된다.

▲호사가들은 16세기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록에 있는 '신의 도시에 번개가 있고 두 형제는 무너지며…세번째 전쟁이 시작될 것'이란 구절이 바로 이번 참사를 뜻한다고 흥분한다. 사실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군(天軍)과 악마의 군사가 지구 종말을 두고 최후 결전을 벌인다는 요한 계시록의 아마겟돈의 그것과 진배없는 것이었다고나 할까.

▲어떤 이들은 이번 참사는 미국이 추진중인 미사일방어망(MD) 구상에 치명타가 될것이라 했다. 또 문명비평적인 측면에서 십자군 원정때부터 있었던 기독교 문명과이슬람문명의 충돌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어떤 시각에서 보든간에 인간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요 비인간화의 극치라는데 이의가 있을수 없다. 얼굴없는 흡혈귀의 복수극을 보면서 "나 대한의용병 참모중장 안중근은 대한독립주권 침탈자 이토를 총살한다"며 의연했던 님의 모습이 다시한번 그립게 느껴진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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