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1-09-10 15:47:00

붉다는 것만으로 치명적일 때가 있다능수벚꽃은

마음을 무장하지 않고는 볼 수 없다고

꽃잎 때문에 살을 감쳐

아득히 길을 잃었다고

병을 얻었다고 그가 말했을 때

이 붉은 꽃 그늘 아래, 함께 앓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겹만 풀면 환할 몸에 겹을 쌓으며

마음이 만들어낸 병은 깊고 무거운데

단명의 꽃들은 얼마나 가벼운가

붉은 눈, 겹겹이 허공에 봉안한 뒤

화르르 쏟아져 내린 세상의 꽃잎들이

진창만창 놀다 간 뒷자리, 붉게 젖었다

사랑도 때를 알고 겹을 푸는 것

-박소유 '을 풀다'

현란하면서 무언가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이라하기는 그렇고 어떤 애련한 정서가 심금을 휘감는 시이다. 꽃잎 때문에 아득히 길을 잃고 병을 얻는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그리고 그 병든 마음에 절실하게 동감하고 싶은 이는 누구일까. 〈겹〉을 푸는 사람? 그럴지 모른다. 이 시는 궁극적으로 욕망의 애옥살이에 갇힌 자아를 위한 한바탕 카타르시스의 푸닥거리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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