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시선이 아니래도, 사막은 사람과는 대칭적이다. 사막과 달리 우리곁의 익숙한 자연은 대체로 사람과 타협한다. 아주 심한 자연재해라도 우리가 타협하고자 한다면, 물론 죽는 사람도 있지만 약간의 희생양만 바치면 금방 타협이 되어 마무리 된다. 따라서 나는 태풍조차 자연의 섬세한 질서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중국의 서쪽 변방이자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 입구에 자리잡은 양관에서 내가 본 것은 사람의 마음과 멀리 떨어진 자연이다. 멀리 나무나 모래 언덕이 있으면 반드시 그 아래로 스멀스멀 물이 스며들어 호수나 바다가 되는 신기루가 있는 풍경은 인간 중심의 시스템이 아니다. 자연에 완전 순응하거나, 속좁게 말하자면 비위를 거스러지 않아야 생존이 가능한 곳이다. 그러한 자연은 둥글다기보다는 각진 느낌을 앞장세운다.
일망무제의 사막과 초원
돈황에서 투르판으로 가려면 10시간짜리 기차를 타야 하는데, 우선 돈황역으로 가야한다. 돈황역은 돈황 시내에서 140여㎞,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대구역이 남원이나 대전쯤 있는 셈이다. 돈황역까지의 기막힌 거리야말로 '넓다'라는 언어의 체험체이다. 그곳 사람들은 비사폭풍과 황사가 만나는 날이면 자신의 팔을 내밀면 손가락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몸서리쳤다.
양관은 그 넓고 비인간화된 풍경의 입구이자 중심이다. 마치 오래된 유화그림 같은 느낌은 그곳이 오래된 유적때문이라기 보다는 더운 날씨와 높은 습도 탓이다. 양관은 텅빈 자연의 내면 같은 곳이다, 라고 나는 메모지에 적어보았지만, 그곳은 입구도 없고 바닥도 없는 자루 같은 곳이라고 다시 적었다. 역사와 지리를 합한 양관이란 한무제가 이곳을 흉노의 침입에 대비한 변경의 봉수대로 삼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터이지만, 나에게 양관이란 그러한 역사와 지리를 제쳐둔 황무지의 이미지로서 더 다가온다. 양관을 소재로 한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를 중국인에게 읽어달래서 외워보았다. 이 시의 마지막 구인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 서쪽으로 양관을 떠나면 친구도 없으리라'를 세 번 읽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기에 흔히 '양관삼첩'이라면 이별을 뜻한다. 나도 어설픈 중국어발성을 통해 왜 평측의 높낮이가 한자말에 끼여들어야 했는지, 왜 진시황 지하무덤의 불빛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깜빡거리는지 생각하면서 붉은 사구 아래쪽으로 내려가보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왔다. 오래 전부터 와야 했던 곳, 숙제처럼 미루어 두었던 곳, 기련산과 명사산이 아련하게 보이고, 가시가 빽빽하게 돋아 있는 낙타풀(蘇蘇草)이 듬성듬성 돋은 양관은 어떤 극점에 대한 투명한 유리문 같은 곳이다. 마침내 이곳에 왔다.
대자연의 초월적 힘 상징
너무나 황량하기에 여기를 벗어나면 곧장 극지로 가는 길이 보이고, 나 하나쯤 행방불명되어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 그리 애통해할 것 같지 않은 곳. 그리하여 서기 399년 이곳을 지나갔던 법현법사가 말한 그대로 "하늘에는 나는 새도 없고, 땅에는 달리는 짐승도 없다. 광대한 사막으로, 갈 길을 물어 볼 데도 없고 죽은 사람의 마른 뼈가 표지가 될 뿐"인 타클라마칸에서 행방을 잃게된 내가 정신을 차리는 곳은 어느 달콤한 오아시스. 하지만 나는 기억상실증으로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 상태이다. 아내도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산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슴아슴한 이미지만 신기루처럼 떠오를 뿐이다. 차츰 유목민의 깃털 같은 언어를 배우면서 스스로도 유목민이라고 믿게된다. 아마 그렇게 해서 내 생은 저 양관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사막 어디에서 마른 뼈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고보면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진시황릉의 높이와 넓이를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분명 유목민의 후예인 이정에게 영향을 주었을, 인간을 간단히 초월한 일망무제의 사막과 초원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대자연의 초월적인 힘을 동경하게끔 했으리라. 만리장성과 병마용갱과 분서갱유는 사람의 정서가 아닌 대자연의 정서가 아닌가. 양관에서 잠시 헛된 꿈에 젖어들었던 사람에게 스며들었던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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