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대 헌납'의문캐는 최찬식씨

입력 2001-09-03 14:19:00

최찬식(75·대구시 동구 신천동)씨. 차분한 백발에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고집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오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10여년 전 귀국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을 '선친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뛰어다녔다. 최씨는 힘센 자의 일방적 종전 선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청와대에 편지를 쓰고 언론사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발의 전사다.

최씨의 선친은 영남대의 전신인 옛 청구대학교 설립자이자 청구대학 학장이던 최해청(1977년 타계). 최찬식씨는 선친이 청구대학 일부 경리직원들의 비리와 이사장의 음모로 대학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한다.

그 후 새 경영진의 무리한 사옥 증축 공사 중 붕괴사고가 발생했고 궁지에 몰린 경영진이 청구대학을 한마디 의논도 없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진상해버렸다고 말한다. 최찬식씨는 그 과정에 생겨난 선친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각계에 탄원서를 보냈고 '청구 증언'을 출간하기도 했다.

최씨는 자신의 억울함이 법률적으로 얼마나 타당한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법이란 게 참 우습고 묘한 겁니다. 법률적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사안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법 시효가 지났다고 진실이 묻혀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쉬어도 좋을 만큼 나이든 최찬식씨가 끊임없이 청와대에 편지를 쓰고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해온 것은 자신의 억울함이 법률의 잣대로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판단에서다.

최씨는 당시 청구대학 경영진이나 정치가들이 사는 방식에는 정당한 규칙이 결여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반칙에 선친이 희생됐다는 것이다.

최씨는 지금 그런 케케묵은 일을 따져서 도대체 무엇을 어떡하자는 말인가 하고 되물어올 때면 맥이 탁 풀린다고 했다. 혹시 금전적 보상을 노리는 것은 아닐까, 학교를 되찾겠다는 욕심은 아닐까 하는 의심에찬 눈을 만날 때면 기가 막힌다고."고인의 업적을 인정하고 그 정신을 이어 달라는 겁니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청구대가 흔쾌히 헌납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설립자인 아버님은 진상 사실을 상황이 종료된 다음 알았어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답게 최찬식씨는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한번쯤 먹잇감이 눈앞으로 지나 갈 것을 믿으며 며칠째 덤불속에 웅크린 채 버티는 사바나 지역의 맹수 같다. 그는 며칠쯤 보도가 늦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며 두꺼운 책(청구 증언)을 꼼꼼히 읽어줄 것을 강권한다.

"오래 살아야지요. 아버님은 반칙에 패했지만 나는 그걸 되돌려 놓아야 하니까요". 굳게 악수하는 그의 손에서 청년의 힘이 전해진다.

조두진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