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을(李木乙)씨. 사람들은 그를 화가라 부르고 그는 자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음색 탓에 전화로는 통 나이를 짐작키 어려운 사람이다. 목을씨는 갓 마흔 살에 닿은 사람답지 않게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110번지, 그의 귀틀집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번갈아 타고, 갈라지는 좁은 길을 만나 몇 번이나 헤매고 여러 차례 전화를 낸 후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집 아래 가파른 언덕은 지프도 숨이 찰 지경이다. 그러나 언덕을 올라서면 상황은 판이하다.
120평 남짓한 터에 32평 귀틀집, 박, 모과, 감나무로 둘러싸인 뜰과 눈 아래로 펼쳐진 너른 들, 작은 내(川), 멀리 자리를 틀고 앉은 마을의 작은 집들…. 이 풍경을 숨기느라 길은 그토록 갈라지고 언덕은 또 그렇게 가팔랐구나 싶다.
목을씨는 일상과 일탈, 상식과 비상식, 환상과 현실이 묘하게 어우러진 사람 같다. 아이들을 걱정하고 아내에게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은 영락없는 생활인의 모습이다. 그림의 소재를 모두 일상에서 차용한 것도 그가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일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 10여 년 외딴 생활이 그렇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귀틀집 생활이 그렇다.
목을씨가 이 귀틀집에 정착한 것은 지난 98년. 홀로 1년 간의 공사 끝에 완공을 본 것이다. 그로서는 3번째 직접 지은 집이다. 전에는 가창 산골 마을과 청도군 각남면에 한옥을 개조해 살았다.
목을씨에게 집짓기는 노동인 동시에 휴식이다. 종일 캔버스를 응시하는 작업으로 한때 반신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기도 했다. 이 집을 짓는 1년의 시간은 그에게 치료와 휴식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휴식과 땀을 소중히 할 줄 안다.
그가 이 귀틀집을 짓는데는 젊은 시절 편력이 큰 도움이 됐다.
"70여가지 직업을 가졌었지요. 보일러공, 막노동, 전기공…. 그 덕분에 집 하나는 잘 지었지요". 통나무를 자르는 톱,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감나무 가지,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불어난 집 앞 하천의 물소리…. 그에게는 생물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모든 일상이 예술이다. 그래서 그럴까. 목을씨가 최근 5년 동안 그린 그림은 일상을 나무 캔버스에 옮겨 둔 것임을 문외한도 쉽게 알 수 있다. 낡은 나무 도마에 그린 등푸른 생선, 당장에라도 신발 주인이 나와 꿰신고 나설 것 같은 문짝 위의 고무신, 어디까지가 생활이고 어디부터가 예술인지 통 모르겠다.
목을씨의 귀틀집 마당엔 그의 게으름을 먹고사는 잔디가 자란다. 어쩌면 그렇게 잘 키웠을까 싶지만 정작 그의 비법은 게으름이다.
"기술이 다 뭡니까. 잔디 잘 키우려면 게을러야 합니다. 꼼꼼하게 흙 깔고 심으면 잡초가 많아 못써요. 그저 모래나 몇 삽 떠다 휘익 뿌리고 잔디를 덮으면 잡초는 없고 잔디만 잘 자라요".
그의 집은 동화 속 그림 집처럼 앙증맞으면서도 일상이 묻어난다. 치열함과는 거리가 먼, 느린 듯, 농담 같은 일상이다.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현관의 굴비, 재작년 가을 시장에서 사와 매달아 두었더니 어느새 굴비로 변하더란다. 소금대신 비바람이 양념이 돼 주었고 정성 대신 무관심이 잘 말려주었다.
화실엔 형광등을 켜 둔 줄 알았다. 알고보니 천장에 피라미드형 채광 창을 두어 햇볕이 잘 들었다. 이 창을 통해 낮에는 햇볕이 들고 밤에는 별들이 찾아와 살며시 안을 들여다본다. 화실 내엔 어떤 건축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합리와 경제성을 따졌다면 애당초 산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귀틀집은 오직 목을씨의 동선에 따라 느리고 유연하게 지어졌다.
그의 화실엔 잡동사니와 그림 소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화가의 작업실이 아니라 장난꾸러기 사내아이를 키우는 여염집 같다. 자리를 차지한 물건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공간과 익숙하다.
목을씨는 이 산 집에서 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밖으로 나갈 일도 드물고 나가더라도 금세 돌아오고 만다. 그에게는 혼자인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찾아오는 이는 맞이하고 떠나는 이는 전송하면 그만이지요. 사물도 마찬가지고요". 목을씨는 계절이 소리 없이 바뀌는 듯 왔다가 떠나는 모든 것은 생활이며 그 생활은 모두 예술이라고 말한다.
외딴 산 속 귀틀집의 화가 이목을씨. 인생은 긴 시간이어서 서둘 필요가 없다는 그는 오늘 저녁에도 느지막이 식사를 마치고 느릿느릿 아랫마을을 다녀올 작정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