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줌마1
그 무덥던 여름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이제는 시원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울적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온갖 집안 일로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산 것이 10년이 넘었다. 화창한 날씨조차도 괴롭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해 늘 마음이 아프다. 가을은 그래서 더 외롭게 느껴진다.
#. 아줌마2
내가 왜 이럴까. 아무도 나를 보고 뭐라고 하지 않는데 왜 마냥 슬퍼지기만 하는지 알 수 없다. 나이는 생각 않고 불만만 하나하나 쌓아가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아줌마가 되어도 고운 아줌마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들키고싶지 않은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아마도 가을을 타는가 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가을은 '여자의 계절'이다. 바람이 선선해지고 가로수의 나뭇잎이 조금씩 윤기를 잃어갈 때면 '가을병'을 앓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아진다. '또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는구나'하고 느낄 땐 더 외로워진다. 이때까지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저만큼 높아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 둘 접어두었던 꿈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러다 괜히 거울이라도 들여다보면 '난 뭘 하고 살아왔을까', '시간만 허비한건 아닐까' 하고 심각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침울한 기분이 지속될 경우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주부가 건강해야 가정이 건강한 법. 슬기롭게 가을을 넘기는 방법은 없을까대부분의 가을 타는 아줌마들은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어했다. 인터넷 여성 포털사이트 미즈넷(www//miznet.daum.net) 즉석투표(8월 30일 오후 현재 2672명 응답) '난 이렇게 가을맞이!'를 봐도'기차타고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43.8%)가 가장 많다. 다음으로 '에세이 한 권, 커피한잔으로 독서'(24.4%), '자꾸자꾸 해도해도 또 좋은 사랑'(22.4%), '낙엽, 그리고 벤치… 고독을 즐길까'(9.4%)의 순이었다.
실제로 김연희(39)씨는 9월초 단짝 친구와 1박2일 가을바다를 보러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심하게 가을을 타는 편이라 올 가을은 또 어떻게 보내나 걱정했는데 남편이 선뜻 동의해줘 용기를 냈다"는 김씨는 결혼 10년만에 갖게된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중이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인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가는 것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30대의 마지막 가을만은 가족에게서 해방되고 싶다.
남편의 반찬투정에 새삼스레 눈물을 흘렸다는 정모(35)씨. 결혼한지 7년이나 지났고 반찬투정도 처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슬퍼진 것은 계절 탓이라고 했다. 뭔가 텅 빈 듯한 느낌과 혼자인 듯한 기분이 들어도 막상 갈 데가 없는 것이 더 서글펐다. 괜히 아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전화하면서 심란했던 마음을 풀었다.
'여행파'와는 다르게 가벼운 외출로 가을을 넘기는 아줌마들도 있다. 김현정(35)씨는 "왁자지껄 시끄러운 시장에서 가을 니트를 하나 사고 돌아오는 길에 미장원에 들러 머리 염색이라도 하면 기운이 솟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기차여행이라도 해볼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 가정생활. 그럴 땐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크게 틀어놓고 진한 향의 커피라도 마셔보자. 아니면 적조했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라도 해보면 어떨까.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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