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천심을 읽어라

입력 2001-08-30 00:00:00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에게 있어 명분을 얻으면 반을 얻는 것이 되는 모양이다. 기원전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굳이 시바에 있는 태양의 신 아몬의 신전으로 신탁을 받으러 갔다. 아몬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함이다. 알렉산더대왕은 그 후 더욱 승승장구했음은 물론이다. 명분을 얻어 민심을 잘 이용한 후광효과 덕택 이렸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인 요즘 세상에서야 국민이 주인인 만큼 그 명분을 국민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국민이 원한다면…"하고 하야까지 하지 않았는가. 정책도 정계입문도 심지어 정쟁(政爭)마저 '국민의 이름'으로 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 세계 곳곳에서 독재자를 쫓아낸 소위 피플 파워라는 것도 다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민심이 천심이라는 우리네 믿음으로 보면 하늘과 국민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신관 퓌티아에 있다. 인간인 퓌티아는 가진자의 손에 좌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도 가짜 신탁도 판 쳤음은 물론이다. 그리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델포이 신관(퓌티아)을 매수하여 해군 우위에 유리한 신탁을 내리게 했다. 육군 우위를 주장하는 귀족세력에 맞서기 위해 신탁을 조작했던 것이다.

신탁의 조작은 요즘 세상이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은 것 같다. 현대의 퓌티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여론조사기관은 상업적 기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때는 정치인 본인이 바로 퓌티아가 되어 스스로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는 둥 함부로 국민의 이름을 팔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96년과 2000년 총선 등 두 번에 걸친 당선 예측 방송이 아닐까. 96년은 '여당이 과반수를 넘긴다'였고 2000년은 '여당이 제1당이 된다'였다. 그러나 결과는 '방송의 신뢰를 떨어뜨려 죄송하다'는 사과방송이었다. 그 원인은 퓌티아의 타락 때문인지 아니면 무능 때문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누구도 모른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참으로 묘한 것이 민심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처럼 너무 민심만 따르다보니 퍼주기가 되어 그만 나라가 망가져 버렸다. 인기주의(포퓰리즘) 대명사인 페로니즘이다. 민심 옳게 읽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국민이 좋아하는 쪽으로'가는 것보다는 민심이 천심이라고 볼 때 '천심이 원하는 쪽으로'가는 것이 옳게 민심을 읽는 것이 아닐까.

그 예가 영국의 대처 전 총리가 아닌가 한다. 대처는 인기위주의 합의 정치를 거부하고 원칙을 세우는 신념의 정치를 강행했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처럼 강한 정치, 강한 정부를 선언한 것이다. 광산노조의 파업에도 원칙을 지킨다는 신념하나로 2년(84~85년)을 버텼다. 3명이 사망하고 3조6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보면서도 끝내는 노조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렇게 노동시장을 개혁함으로써 노동쟁의도 큰 요인의 하나였던 오랜 영국병을 치료해 낸 것이다. 이렇게 대처는 인기 대신 고통을 선택했다. 그런데도 영국국민은 여러 번의 선거에서 대처를 지지해 주었다. 여기에는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희망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대처는 한 차원 높은 민심을 읽은 것이다. 지도자의 혜안이 여론 조사기관만의 조사를 앞질렀다고나 할까. 결국 민심은 천심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현재 어떤가. 지난해 9월 소위 민주당 13인의 금요일의 반란에서 나온 "온 나라가 위기인데 대통령만 모르나"는 지적이 나왔다. 민심읽기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민심을 모른다는 소리도 나오고 정책이 인기주의적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대통령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후세에 평가를 받겠다"고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어느 당에도 과반수를 주지 않은 것은 대화와 타협을 하라는 하늘의 명령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민심을 잘못 읽은 한 예가 아닐까.

그리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케네디 정책대학원의 연구 결과이다. 우리 정부 역시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효율적인 정책수행이 어렵다. 나라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는 천심(天心)을 읽어야 해법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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