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정보-중원 호령하던 고려 여인의 기개

입력 2001-08-29 15:28:00

몽골족이 세운 원(元) 제국을 뒤흔든 고려출신 황후의 일대기가 KBS 1TV '역사스페셜'을 통해 방송된다. 9월 1일 오후 8시 '미스코리아 기황후, 대원제국을 장악하다'라는 타이틀로 방송될 이 프로그램은 13, 14세기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을지배했던 원나라를 거머쥔 여인 기황후의 인생역정을 추적한다. 대원제국을 장악한 고려여인 기황후를 만나고 기황후를 통해 중국 대륙에 묻혀졌던고려의 역사를 끄집어내 본다.

공녀의 몸으로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던 기황후에 대해 중국 역사서 '원사'는 고려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출신인 그녀가 원제국에 가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같은 의문을 남기고 있는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많지 않다. 취재팀은 중국 대륙을 밟으며 기황후의 흔적을 찾았다.

고려 고종 46년(1239), 몽고와의 30년 항쟁 끝에 고려는 결국 무릎을 꿇는다. 그 후로 원제국은 고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그 중하나가 공녀, 즉 여자를 바치는 것이었다. 이 공녀제도 때문에 기황후가 원제국에 오게된 것이다. 기씨는 처음엔 궁녀의 신분으로 궁에 들어왔으나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제1황후였던 타나시리가 순제 모반사건에 얽히면서 사약을 받고 순제는 기씨를황후에 책봉하려하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하지만 곧 기씨가 아들을 낳으면서 1339년 제2황후로 파격적인 등극을 한다. 기씨가 아들을 낳은 것이 황후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환관과 고려 왕실의 역할도 컸다.

제작진은 당시 원제국에서 불었던 고려유행 즉 고려양에 대해서도 조명해본다. 공녀로 간 고려여인들의 저고리와 치마 등 2부식 복식이유행했고, 우리나라의 전통 한과의 일종인 매작과와 비슷한 음식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병, 고려다식, 고려 조청이 전해졌다. 그리고북경에 고려인의 집단거주지인 고려정이 있었다.

기황후에 대해 전하는 역사 기록은 철저히 봉건적인 유학의 관점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등 부정적이다. 그러나 고려를 원의 한 성으로 입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무마시키고 다른 복속국과 달리 고려가 국호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황후의 힘이 컸다. 뿐만아니라 순제를 통해 충렬왕 이후 80여년간 지속되던 공녀제도를 폐지시킨다. 기황후에 대한 재평가를 조심스럽게 할 무렵 700년만에 이뤄진 기황후의 영정봉안식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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