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되는 남성외모가꾸기

입력 2001-08-29 00:00:00

"여자의 변신은 무죄, 그렇다면 남자의 변신은?".신세대 남성들이 목걸이 귀걸이를 하고 다니거나 머리에 염색을 하고 긴 머리를 묶어 다니는 모습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외모 가꾸기'는 더이상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제 남성들사이에서도 보편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의 유통업체 이모(34) 과장은 지난 봄 어느날 아내의 따가운 '시선'을 감지했다. 그 며칠 뒤 아내의 '추궁'이 시작됐다. 결혼 반지와 시계는 빼놓고 다니면서 왜 패션시계를 하고 다니며 향수는 왜 뿌리는 지, 생전 안하던 '코팩'이나 '스크럽(각질제거)'을 하는 이유가 뭔지, 왜 그렇게 자주 거울을 보는 지….

"당신 혹시 애인 생긴 것 아냐". 속사포 같은 아내의 닦달에 이씨는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

여자 앞에서 말도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는 이씨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평소미용실에서 머리 깎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워했을만큼 외모 가꾸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그였기에 오해를 살만도 했다.

"더 이상 회사에서 혼자 '촌닭' 취급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깔끔한 외모의 동료나 후배들에게 경쟁에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시도한 것 뿐인데…".

22일 오후 대구시 중구 봉산동 하얀피부미용실에는 얼굴에 팩을 하고 침대 누워있거나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젊은 남성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손님 중 남성이 거의 절반에 가깝다고 한다. 주로 검붉은 피부를 개선하거나 여드름 흔적 등을 없애기 위해 찾는 사람들. 바캉스철을 앞두고 '선탠'을 하러온 손님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고 한다.

이 업체 대표 이영옥씨는 "90년대 중반부터 남자 손님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젠 상당히 보편화 됐다"며 "면접시험을 앞둔 수험생, 취업준비생,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직원 등 손님의 유형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화장을 하는 남성들도 있다. 하얀 피부 표현을 위해 파운데이션을 살짝 바르거나 립스틱 또는 립그로스를 발라 촉촉하고 생기있는 입술을 강조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동성로 등지의 네일아트전문점에는 손톱정리는 물론 손톱에 그림을 그리거나 인조장식물을 붙이고 싶어하는 남성들도 있다.

이같은 추세에 힘입어 여성만의 공간이던 미용실이나 피부관리실에도 '남성전용'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피부과·성형외과에도 남성의 발길이 늘고 있다. 올해 대한피부과 춘계학술대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성형수술환자의 성별을 분석한 결과 남성의 비중이 지난 95년엔 7%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엔 31% 높아졌다. 남성 가운데서도 40, 50대가 63%로 나타나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가 신세대만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형수술의 목적이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것에서부터 원만한 대인관계 유지 등으로 확대되면서 수요자의 연령층도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남성들은 남성의 상징인 수염까지 없애고 싶어하는 '급진주의자'(?)도 있다.이용현 피부과 전문의는 "외모에 대한 요즘 남성들의 생각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며 "얼굴의 털은 물론 코밑이나 턱수염까지 없애달라는 '중성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않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남성의 외모가꾸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들은 대부분 대인관계·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중년 남성과 취업과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 등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관리선발 기준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게 있었다. 외모, 언변, 문필력, 판단력 등 4가지를 지칭한 말이다. 과거에도 남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요즘은 능력이 우선하는 사회라고 강조하지만 아직도 외모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이무상 성형외과 전문의는 "성형수술을 원하는 남성들은 완전한 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결점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많다"며 "그러나 외모에 너무 집착하거나 환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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