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과일.소값 올해만 같아라

입력 2001-08-28 00:00:00

"더도 덜도 말고 올해만 같아라!" 농촌에 지금 화기가 돌고 있다. 혹심했던 가뭄과 마늘.소 수입 파동을 겪어 오긴 했지만 가을 들면서 농산물 값이 전례 드물게 좋아졌기 때문. 이때문에 농촌 인심도 달라졌고, 가게들도 신명을 내고 있다. 심지어 농협 자금까지 앞당겨 갚는 사람이 나올 정도이다.

◇이 기분=의성 마늘 농사꾼 김재윤(50.사곡면 양지1리)씨는 "올해 정도 가격이 2, 3년만 계속돼도 그 동안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작년에 마늘 농사를 3천200평이나 짓고도 빚을 2천500만원이나 졌다는 그는 "요즘은 읍내 장에 나가면 그래도 고기 구울 여유가 생겼다"고 너털댔다.

자두 주산지인 의성 봉양면 일산지역에선 출하기가 20일이나 전에 끝났지만 아직도 모여 앉으면 어느 집은 얼마나 벌었는지를 화제 삼고 있다. 자두값이 예년보다 평균 48%나 비쌌었기 때문. 그 결과 이달 초까지 이 지역에 풀린 자두 값이 수십억원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신모(44)씨는 "자두 본격출하 때는 개도 만원짜리만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했다. 축산농들도 "짐승 키운 이래 최고의 해"라 말하고 있다. 의성축협 서관식 이사는 "올해 같이 소 값이 오른 것은 처음"이라며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느낀다"고 했다. 최근 다소 진동 조짐을 보이긴 하지만, 500㎏짜리 암소는 생체 ㎏당 8천원에 거래될 정도.5일장에 나오는 농민은 물론 상인에게서도 활기가 돌고 있다. 의성읍내 불고기 식당 김모(50.여)씨는 "마늘.고추.사과 값이 좋아진 뒤 손님이 늘었다"고즐거워했다.

서재현 의성 사곡면장은 "역내를 돌며 농민들을 만나보면 작년과는 영 딴판임을 알 수 있다"며 "농산물 값이 농촌 인심마저 다르게 한다는 이야기를실감했다"고 했다. 값이 좋아진 뒤 시위가 자취를 감춘 것은 물론이고 농촌 민심도 더없이 좋아졌다는 것. 안평농협 이원희 조합장은 "요즘엔 상환 기일이남았는데도 영농자금을 앞당겨 갚으려는 농민들의 문의가 잇따른다"고 했다.

◇역시 값이 문제=마늘.축산을 병행하는 의성의 김원택(48.단촌면 후평리)씨는 "농사도 돈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농사는 잘 짓는 것도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값을 잘 받는 것, 즉 시절을 잘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함은 이미 오래 전부터 농민들의 소원이 돼 온 것.

올해는 이 소원이 풀린 셈. 지난 22일 의성 조광농산 영농법인이 자체 공판장에서 실시한 경매에서는 김영조(61.옥산면 입암리)씨가 출하한 '아이다존사과' 한 상자(20㎏)가 무려 17만5천원에 경락됐다. 35개가 들었으니, 한 개 값이 5천원이나 된 것. 이런 상황 때문에 사과 주산지인 의성 점곡.옥산 지역 농가들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의성축협 안대호 전무는 "돼지 값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생체 100㎏에 17만원 선은 유지되고 있어 아직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참외.수박.토마토 등 대표적 하우스 농사 지역인 성주 농민들도 "내년 농사도 올해만 같아라"고 노래삼아 하고 있다. 예년보다 값이 20∼30% 높았기 때문이다.

참외는 7월 말까지의 상자(15㎏)당 평균가가 2만7천170원으로 나타났다. 작년에는 2만1천360원이었다. 박재효(55.선남면 성원리)씨는 "한창 때는상자당 10만원을 넘기도 했었다"고 흐뭇해했다. 선남농협 석종택 조합장은 "올해는 수입이 억대를 넘는 농가도 적잖다"고 했다.

오렌지 수입 등 때문에 1만원도 안하던 토마토값 역시 올해는 상자(10㎏)당 2만원을 웃돌아 수출조차 기피할 정도였다. 대가면 배재관(44)씨는 "하우스 1천500평에 토마토를 심어 7천여만원을 벌었다"며, "이 정도라면 농사 지을 맛이 난다"고 했다. 수박도 마찬가지.

◇남은 그림자=하지만 이제 추수가 시작되고 있는 쌀은 문제거리. 작년에 100만t을 넘어 섰던 전국 재고가 올해는 150만t마저 초과할 것이며, 그 때문에 정부 수매가 끝나고 나면 값이 10%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이미 나와 있다.구미의 박동규(46)씨는 "이제 시중 출하가격이 수매가를 밑돌게 되고 수매량까지 갈수록 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산물벼를 사서 고품질쌀을 생산하는 미곡처리장들도 올해는 매입량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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