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라운드 10년-우리농업 어디로 가고 있나

입력 2001-08-28 00:00:00

(14)위기의 과수농업

"이대로 가다가는 경북 사과의 장래가 위험합니다. 더 늦기 전에 품종 개발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청송에서 20년 넘게 사과농사에 매달려 온 김상구(47·현서면 구산2리)씨의 이야기는 섬뜩했다. 시장 개방 후 값싼 외국 과일들이 쏟아져 들어 오는데 반해 국내 소비자 입맛은 갈수록 이탈해 사과 값은 뚝 떨어지는데도 경작비는 높아만 간다는 것.

"IMF사태 전에는 부사 한 상자(15㎏)가 8만원 가량 했지만 지금은 3만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시장조차 오렌지 같은 수입과일들이 잠식했지요. 그러나 우리 농촌은 고령화돼 그렇잖아도 농사지을 사람도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 현서면의 500여 사과농가 중에선 해마다 5, 6농가가 사과나무를 파 내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농가들도 당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답답해진 사과농들이 1995년 '사과사랑 동호회'를 만들었고, 김씨는 올해 2대 회장에 취임했다. 살길을 찾아 보자는 뜻.

예천 지보리에서 1986년부터 8천평 사과밭과 2천평의 대추밭을 경작하는 조현범(41)씨도 "10여호 되던 사과 농가가 이제 3농가로 줄었다"고 했고, 청송 부동면의 권영대(55)씨는 10년 넘게 농사 짓던 사과밭 2천500평을 아예 폐원하고 청송읍내 도계장에 취업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사과가 벼랑에 선 것이다. 생산량의 65%를 차지해 전국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지역 자체로도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던 사과. 덕분에 한때 고소득을 자랑했고 농촌 기계화와 유통 첨단화를 선도하기도 했으나, 이제 사과 밭은 점차 다른 과수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사과는 다른 과일보다 소득도 낮아져 더 취약해졌다. 농촌진흥청이 1992~98년 사이 평균 표준소득을 조사해 본 결과, 10a(300평)당 소득이 사과는 156만원에 불과했으나 배는 254만원, 복숭아는 169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지금은 중국의 위협까지 가시화되고 있다.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도 위기감을 높였다. ㎏당 생산비에서 한국은 773원이나 되지만 미국은 388원, 이태리는 292원밖에 안된다. 10a(300평)당 노동시간은 한국이 286시간에 이르지만 미국은 46시간, 이태리는 66시간에 불과하다. 반면 그 생산량은 한국이 2천391㎏에 그치는 반면 미국은 3천745㎏, 이태리는 4천250㎏, 일본은 4천200㎏에 달한다.이때문에 세계 25개 주요 사과 생산국 중 한국의 경쟁력은 17위로 떨어졌다. 세계생산량(5천600만t)의 32% 넘게 생산하는 중국이 20위로 뒤처져 있지만 값(도매)이 ㎏당 350원(한국 2천126원)밖에 안돼 사정이 또 다르다.

까딱하다간 사과 농업의 기반마저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그래서 더 커진 것이다. 미국 사과농업을 실태조사한 바 있는 경북도청 이태암 농정과장은 "가격 경쟁력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다른 특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실태조사에 나선 박재종 유통특작과장은 "검역 문제만 해결되면 중국의 위협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과수 재배가 급증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이길 수 있을까? 34년간 사과와 함께 살아 온 대구·경북능금농협 정윤수(60) 상무는 "지금부터라도 독특한 품종 개발과 기술지원 등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1999년에 '우리 과수원 신품종 찾기 사업'을 제안했던 경북도청 정책기획팀 석태문 박사도 "일본이 품종 대국으로 성장한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북도청은 노동력 절감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1996년부터 키 낮은 사과나무 보급에 나서고 있다. 안동 권세원(52·일직면 구천리)씨는 6천평 중 절반을 키 낮은 나무로 바꿔 작년에 첫 수확해 본 결과 "종전보다 인력·농약이 60~70%까지 적게 든 반면 상품 출현율은 90%까지 높아졌다"고 좋아했다. 묘목 값이 그루당 1만원(㏊당 3천만원)이나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도청 이형조 과수담당은 "키작은 나무가 아직은 5%밖에 보급이 안됐지만 2010년까지 80%로 끌어 올릴 것"이라고 했다. 농림부 과수화훼과 김석호 사무관도 "정부도 융자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품종 개량을 위해서도 농촌진흥청이 1992년 군위에 사과연구소를 설립됐다. 지금까지 150억원을 투입했으며, 이순원(48) 소장은 "품종 개발에 치중해 이미 6개 새 품종은 보급까지 했다"고 했다. 김목종 연구관은 "해마다 7, 8건의 재배 기술을 보급해 왔고 3건의 특허도 받았으나 투자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권광남기자 kwonk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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