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우리민요'

입력 2001-08-23 15:17:00

(33) 목적의식 분명한 큰 애기의 베틀노래

'공부해서 남 주나!' 공부는 구조적으로 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일은 다르다. 일해서 남 주는 경우는 허다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번다'는 옛말처럼 노동소외 현상 탓이다. '일 한 만큼 잘 사는 사회'라는 구호는 노동소외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늘 문제이다. 잠을 쫓아가며 재봉틀을 돌려 이쁜 옷을 지었으되 제 손으로 만든 옷 한 벌 입어보지 못한 봉제공장 아가씨들이나, 등뼈가 휘어지도록 등짐을 지며 고층 아파트를 지었으되 그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지 못한 일용 노동자들이 많다. 베짜는 여인들은 어땠을까.

'처제처제 하늘처제/ 비 잘 짠다고 소문났네/ 그 비 짜서 누 해 줄래' 베 짜는 처녀에게 그 베를 짜서 누구 옷을 해 줄 것인가 묻는 노래가 많다.해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했듯이 끊임없이 왜 베를 짜는가, 뭘 하기 위해서 베를 짜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의문이야말로 노동소외를 극복하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정권교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묻고 또 물어야 정치개혁이 가능하다. 베틀노래의 질문이 궁금하다.하늘에다 베틀 걸고/ 구름 잡어 잉애 걸고

안개 잡어 선을 둘러/ 형제나무 바디집에

대추나무 북에다가/ 울렁절렁 짜느랑께

웃집할매 북 얻으러 와서/ 그 베 짜서 뭣헐랑가

전남 함평땅 윤상금 할머니 소리이다. 베를 잘 짜는 하늘 처녀답게 하늘에다 베틀을 차리고 구름을 잡어서 잉애를 걸었다. 그러나 엉뚱한 환상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잊어버릴 수 없다. 하늘에서 구름, 안개, 형제, 대추나무로 현실 감각을 회복한다. 울렁절렁 베를 짜는 데 이웃집 할매가 북 얻으러와서 '그 베 짜서 뭣을 헐랑가?'하고 묻는다. 현실적인 노동을 한층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만들며 분명한 목적의식을 일깨워 주는 질문이다. 우리 오빠 장개간디/ 청포도포 지여냈네

그 남치기 뭣헐랑가/ 우리 아버니 후례가는

청포도포 지여내네/ 그 남치기 뭣헐랑가

우리 성님 시집갈 때/ 가매 얼기 때라수요

그 남치기 뭣헐랑가/ 우리 성님 시집가서

반포수건 띄여 갖고/ 횃대뿌리 걸어놓고

옴서 감서 눈물닦기/ 다 젖었네

베 짜는 목적이 한결같다. 오빠 장가들 때 청포를 짓고 그때 후행(後行)하는 아버지 도포도 지어드리겠다고 한다. '그 나머지는 뭣 헐랑가' 질문이끊임없다. 마침내 언니 시집 갈 때 가매 얼기를 매는 데 쓰고, 또 반포수건을 만들어 횃대 끝에 걸어놓고 시집살이 눈물날 때 눈물수건으로 쓰겠다는 것이다.짠 베를 자기 뜻대로 오빠와 언니의 혼례용으로 쓴다는 점에서 목적의식이 분명하지만, 불거져 있는 성차별의 문제는 어쩔 수 없다. 따라서 여성들에게 베는치레용 옷감이 아닌 기껏 눈물받이로 나가는 것이다. 참나무야 바디집에/ 살랑쳐도 소리나네

베 잘 짜는 영애애기/ 베 잘 짜는 소리 듣고

만고 한량 길 못간다/ 만고 한량 길 못간들

'짜던 베를 걷을소냐' 거제 사는 김방자 아주머니 소리이다. 참나무로 만든 바디집을 살짝 쳐도 그 소리는 제법 요란하다. 베짜는 소리는 곧 바디치는 소리이다. 길 가던 한량이 처녀의 베 짜는 소리를 듣고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처녀가 베 짜기를 그만 둘소냐?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마음이다. 한량의 일방적인 감정에 흔들리다 보면 자신의 정서는 한갓 남의 노리갯감에 지나지 않는다. 한량의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베를 짜겠다는 처녀의각성이 꿋꿋하다. 일은 물론 사랑에서도 자신이 주체가 될 때 인간해방에 이른다.찔거덕 찔거덕 짜는 베로

언제 짜고도 일어낫고

저 해가 떨어진다

밥하로 일어나자

어서 짜고 일어나자

"이 베로 짜서 골베로 짜서/ 울오마니 옷을 해여/ 바지하고 처매하고 해서로/ 홍두깨 방망이 뚜딜어서/ 옷을 해서 걸어놓고 있이면/ 오만 사람이 치사로 안하겄나/ 어서 짜자 어서 짜자/ 어서 짜고도 일어나자"거제 현순금 할머니 소리이다. 처녀들과 달리 부인들은 베만 짤 수 없다. 아기가 보채면 젖도 물려야 하고 끼니때가 닥치면 꼬박꼬박 밥을 짓고 빨랫감이모이면 빨래도 해야 한다. 따라서 언제 베를 다 짜고 베틀에서 일어날까 늘 마음이 바쁘다. 이런 가운데에도 해가 저물면 마음이 더 바빠진다. 저녁밥을 지어야 할 뿐 아니라 일할 날짜를 하루 까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베 짜는 일을 재촉한다. 베를 얼른 짜서 시어머니 바지와 치마를 지어 주면 동네사람들이 치사할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 속에 어서 짜고 일어나자고 재촉하는 것이다. 한결같이 헌신적인 베짜기 소리이다.

밤에 짜며는 월광단이요

낮에 짜며는 일광단이네

일광단 월광단 다 짜고보며는

서방님 와이사쓰나 하여나 보세

하동 사는 원우송 할아버지가 중년소리를 불렀다. 전통소리와 달리 베짜는 일과 무관하게 부르는 한량들의 소리이거나 기방에서 부르는 잡가에해당된다. '베틀노래'에 대해서 놀이판에서 부르는 이들 잡가를 흔히 '베틀가'라고 한다. 베틀가의 상투적인 문맥이 '밤에 짜면 월광단이요 낮에 짜면 일광단'이라는 대목이다. 밤낮으로 베를 짜는데, 그 베가 낮에 짠다고 다르고 밤에 짠다고 다를 리 없다. 그러나 짜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햇빛을 받고 짠 일광단과 달빛을 받고 짠 월광단 만큼이나 다르다. 베가 다르다고 거기에 따라 다른 옷을 별도로 지었는가. 아니다. 기껏 서방님 와이셔츠감으로 다 나갔다.그럴 바엔 월광단인들 어떻고 일광단인들 어떨까. 군부정권에 맞섰던 두 김씨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다투어 정권을 잡았다. 다 같은 민주인사의 집권이지만 양김 정부는 월광단과 일광단 만큼이나 다르다.김영삼씨가 야당을 버리고 군부세력과 은밀한 야합으로 집권을 하였다면, 김대중씨는 야당을 지킨 채 군부세력과 연합하여 집권을 하였다. 따라서 김대통령은명실상부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은밀한 야합과 공공연한 연합은 월광단과 일광단 만큼이나 수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군부정권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마침내 김종필을 대표 자리에서 몰아냈으며 군부정권의 전직 대통령들까지 사법처리하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고도 군부세력들과 계속 연대하지 못해 먼저 손을 내밀기 일쑤이다.국민의 요구로 사법처리한 전직 대통령을 풀어준 것은 물론, 계속 그들과 부적절한 연대를 꾀하며 박정희 기념관까지 추진하고 있다. 게다고 다시 김종필 총리설또는 당대표설이 나돌고 있는 것이 지금 여기 김대중 정부의 실제 상황이다. 법대로라면 벌써 사법처리되었을 김윤환마저 여당 공동대표로 영남주자론을 펴며여전히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있다.

나는 일찍이 현 정부를 반쪽 정권교체로 규정하였는데, 지금 군부세력과 짝짜꿍하는 것을 보면 껍데기 정권교체라 해야 마땅하다. 만일 여당실세들의뜻대로 김대중 정부에서 다시 김종필이 총리가 되거나 공동여당대표가 된다면 무덤 속의 박정희가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닌가. 나는 김대통령에게 정권교체를 왜 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들과 손잡고 '정권재창출해서 뭣 헐란가?' 김윤환, 김종필과 새 3김 시대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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