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도시 대구 세계인이 되자-(9)빨리 빨리병

입력 2001-08-21 14:14:00

얼마 전 홍콩을 방문한 한국 남자 관광객이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다 들켜 항의를 받는 소동이 일어났다. 생리 현상을 참지 못하고 급한 김에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다 빚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다. 현지방송까지 보도에 나서면서 이 한국인은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치게 됐고 국가 이미지에도 먹칠을 했다. 관광가이드 김희진(24)씨는 "외국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 중 십중 팔구는 한국인"이라며 "특히 성격 급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사람들을 안내할 때는 신경이 곤두선다"고 털어놓았다.

또 동남아시아 , 괌, 사이판 등 유명 관광지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영어나 일본어가 아니라 '빨리빨리'라는 한국말이라고 한다. 이곳을 방문한 한국 광관객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빨리빨리'를 외쳐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세계가 알아주는 성질 급한(?) 민족이 돼버렸다.

'빨리 공부하고, 빨리 출세하고, 빨리 돈벌고'. 우리 사회전체에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하면서 부실공사로 인한 대형사고, 각종 범죄, 교통위반을 불러일으키고 공공장소에서 남을 배려하는 모습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빨리빨리' 문화가 교통문화를 병들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중에서도 대구의 교통문화는 악명높다. 신호등의 녹색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출발하려는 운전습관, 정지표시판이 있어도 일단 멈추지 않고 통과하는 습관, 남보다 먼저 가려고 끼어드는 얌체운전, 급하다고 좁은 도로 아무데나 차를 세워 차량 흐름을 막는 잘못된 주차 등은 시내 곳곳에서 지겹도록 보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온지 한달 정도됐다는 이선영(35, 대구시 동구 효목동)씨는 "운전하기가 너무 무서워 이사온지 한달만에 승용차 운전을 포기,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작년 한해 대구지역의 교통위반 건수는 56만8천932건으로 인구대비 서울의 40%, 부산의 20% 가까이 많아 무질서한 교통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빨리빨리' 문화의 병폐는 도로 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다.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안달하는 모습은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차례를 지키지 않는 것이 당연시된지도 오래다. 계명대 사회학과 김혜순 교수는 "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압축성장과 군사문화에서 비롯됐다. 기본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풍토를 없애고 기본을 지키도록 법적·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교육화·의식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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