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가벼워야 뜬다'(?)

입력 2001-08-20 14:00:00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켰던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자유분방한 두 남녀와 이와는 달리 진지하고 엄숙한 삶을 유지하려는 또 다른 남녀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에 산다는 의미에 질문을 던지는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지나치게 진지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모두 그릇된 믿음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때문에 '가벼움'에 대한 찬양인가 하는 문제로 적잖은 논란도 일으켰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것만은 사실이다.

▲대학에서 문.사.철 등 인문학이 찬밥 신세가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도서관마저 동네 만화방을 방불케 하는 모양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학교도서관에서 주로 빌려보는 책은 팬터지와 무협지 등 대중소설류에 편중돼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상반기 최대 대출 도서 10권 중 나관중의 '삼국지'를 빼면 '묵향' '성검전설' '드래곤 라자' '다크문' 등이 최상위다.

▲영화는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N세대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개봉 6일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신라의 달밤'은 두달만에 관객 400만명을 넘기면서 상승가도다. 과장되고 유치하며 억지 꼬집기와 비틀기의 가벼움으로 일관하는 영화들이 판을 친다. '가벼워야 뜨는' 세태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한 설문조사에선 '밝고 쾌활한 성격'(36%)이 '과묵하고 진지한 성격'(5.5%)이나 '이성적이고 지적인 성격'(3.5%)을 압도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웃을 줄 아는 노이로제 환자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절반은 치유된 셈'이라고 말한 학자도 있다. 또 어떤 학자는 '천사가 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무겁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자신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겸손하고 여유가 있으며 행복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조건 가벼운 것을 경멸하거나 유머까지 천박하다고 여기는 것도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쪽으로만 흐르고, 존경의 대상인 역사적 인물마저 가볍게 희화화하는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세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책은 영혼의 양식일 텐데 읽기를 가볍게 하거나 삶 자체마저 그렇게 소비하는 문화현상을 분명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과 불신 때문에 순간ㅋ적인 가벼움 쪽으로 도피하고 있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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