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생, 취업커녕 실습장도 없다

입력 2001-08-20 12:34:00

기업경기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실업계 고교 3년생들이 취업은 커녕 현장실습 나갈 업체조차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가 뒤늦게 전문대 진학으로 진로를 바꿔 실업계 고교가 전문대 진학의 징검다리로 전락한다는 우려도 높다.

포항공단의 경우 200여개 입주업체 중 졸업 후 정식채용을 전제로 고3 실습생을 받아들인 업체는 중소기업 5∼6개 정도에 불과하고, 경리직까지 합해도 10여명에 그칠 전망이다. 지역 실업계고 취업담당 교사들에 따르면 외환위기 사태 이전에는 포항공단과 경주 용강·외동공단 등 업체들이 고3 취업희망 남학생의 30% 이상을 현장 실습생으로 파견 받았으나 올해는 거의 없다는 것.

경북도내 취업 희망 여학생의 절반 가량을 채용했던 구미의 전자·반도체 관련 업체들 역시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 등 악재로 고전하면서 현장실습 수용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포항 한 여자 실업고 경우 지난해까지는 취업 희망자 전원이 졸업 후 완전취업이 보장되는 대기업 2, 3개를 놓고 골라가며 현장실습을 나갔으나 올해는 100여명만이 대기업으로 갔을 뿐 나머지는 중소기업이나 개인 취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어렵사리 현장실습을 나갔다 해도 부도.휴폐업.감원이 겹치면서 일도 제대로 못해보고 학교로 돌아오는 학생이 10%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유소.유통업체 등에서 시간제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서류만 취업한 것으로 꾸며 제출하는 학생도 적잖아, 학교측이 학생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때문에 실업계 고3생들 사이에 "일자리도 없는데 대학이나 가자"며 전문대 진학으로 돌아서는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경북도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고 졸업생 1만5천700여명 중에선 44%가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올해는 훨씬 더 늘 것이라고 교사들은 내다봤다. 이들은 "현장실습할 업체조차 못구해 전문대에 진학한다면 실업계고의 존재 의미마저 퇴색하는 것"이라며, "채용 기업에 혜택을 주는 등 실업계고 정상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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