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신문배달 배은숙씨

입력 2001-08-13 15:36:00

◈작지만 당당한 내일

새벽 5시 15분. 배은숙(40.대구시 동구 검사동)씨는 오늘도 집을 나선다. 지난 98년 10월부터 해온 신문배달을 위해서다. 그사이 체중이 5㎏이나 빠졌고 건강도 지켰지만 이젠 다른 이유로 그만 둘 수가 없다. 일 안하는 자존심보다 일하는 자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땐 보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혼자 부끄러워했죠. 남편도 힘들테니까 한 달만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 남편도 생활에 활력을 찾은 아내의 모습을 보고 요즘은 얼굴이 환해졌다.

배씨가 배달하는 신문은 하루 120∼150부정도. 1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된다. 아파트단지라서 다른 곳보다는 많이 수월한 편이다. 한 달 수입은 25만원선. 적으나마 분명 가계에 보탬은 된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 중요한 기준은 아니다. 가족들에게 묻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어갈 때 나를 되찾은 기분을 다른 사람들은 알까. 작으나마 '내 일'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환경미화원, 아파트경비아저씨,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 신새벽부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엄마가 많이 아팠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신문배달을 나가셨다. 맡은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한 엄마가 좋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엄마에 대한 글'로 최우수상을 받은 내용이다. 몸살로 밤새 끙끙 앓다가도 다음날 새벽에 나가는 엄마를 보고 느낀 것이 있었나 보다. 가끔 날씨가 좋을 때는 같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신문배달한 것도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배씨의 신문배달엔 건강한 삶이 있고 '나의 일'이 있어 행복하다. 그렇게 배씨는 매일 새벽이면 집을 나선다.

박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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