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역경제 살리기

입력 2001-08-03 14:54:00

지역경제의 차별화와 기술집적 단지의 조성과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버클리 대학의 애너리 색스니언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 분은 실리콘 밸리의 성공요인에 관해 가장 권위 있는 연구를 인정받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제2의 실리콘 밸리를 실현시키기 위해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나"라는 필자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대답한다. "혁신 주체들간에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시작하라·" 즉 기업, 대학, 지방정부, 금융기관 등 핵심 경제주체들이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생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국제적으로 차별화된 지역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적인 밀어붙이기식 개발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애매모호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유사한 기술집적 단지를 모방하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거나 지지부진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애매모호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인다 하여 벤처 보육센터 및 벤처 단지의 조성, 지원자금의 조성 등 외형적 요인에 집착해서는 실패만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지역을 보자. 이 지역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의 강력한 자금지원, 창업투자회사들의 설립, 뛰어난 주거환경 등을 자랑하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고 있지 못하다. 외형적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추었지만 경제주체들간 시너지 창출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첨단산업단지 조성과 관련된 각종 육성계획은 실패확률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산·학·관 사이의 대화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요구하는 대화와 협력의 수준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즉 각 주체들이 생존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한다.

첫째, 지방정부는 밑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으려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지방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은 중앙부처로부터 예산 따오기, 공단의 유치 및 조성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차별화된 경제적 동인 없이 이끌려 내려올 기업은 거의 없다. 또한 인위적으로 조성될 수 있는 공단이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경쟁력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이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릎을 굽혀 맨땅을 살피며 새 싹을 발견하고 가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두개 세계적 기업이 하이테크 집적단지를 촉발시키고 그 지역을 먹여 살리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에 안주할 수 없다. 국립대학조차도 경쟁 속에서 스스로 재정적 자립기반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산학협동은 생존의 차원에서 필요하다. 대학의 재정과 연구비가 졸업생과 그 지역의 성공한 벤처기업들에 의해 충당되는 비중은 세계적으로 증대되는 추세이다. 기초학문 분야도 이러한 재정적 기반 위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업은 대학과 연구소로부터 아이디어와 지식을 공급받지 않을 수 없다. 규모의 경제, 대규모 자금의 조달, 정부의 시장보호가 과거의 성공논리였던 것에 반해 이제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지식이 핵심적 성공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산학협동은 기업으로부터 주어지는 시혜적 결과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 되었다.

넷째, 사회단체들은 보수적 지역문화를 혁신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성공한 기업인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실패를 격려하는 지역문화 속에서만이 왕성한 기업가 정신이 꽃을 피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지역문화의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은 경제주체들 중 어느 하나만이 생존하여 잘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대화와 협력이 없으면 공멸할 지 모른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장우(경북대 교수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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