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08-02 15:19:00

(30)잠과 싸우며 부르는 삼 삼기 노래

남정네들이 논들에 나가 불볕 더위에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논매기를 할 때, 아낙네들은 집안에서 삼둑가지를 앞에 두고 두레 삼을 삼으며

길쌈을 하느라 분주하다. 여러 가지 길쌈 일 가운데에도 삼의 올실을 하나하나 이어가는 삼 삼기 작업이 제일 지루하고 무료하다. 삼실 한 올의끝을 앞니로 물어뜯어 두 갈래로 만들고 다른 올실 끝을 다시 물어뜯어 뾰족하게 만든 다음, 이 두 끝을 허벅다리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비벼서 계속 이어나간다.

요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두고 두 패로 갈라져서 서로 물어뜯고 싸우느라 나라가 온통 소란스럽다 못해 귀를 씻어야 할 형편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문인들은 문인들대로 지식인 논객들은 논객들대로 상대편 말꼬리를 잡고 대거리를 하며 극단적 비유와 원색적 비난들을 거침없이쏟아놓다가 마침내 상스런 욕설까지 내뱉는다. 삼실 끝을 물어뜯으며 실꼬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삼 삼기처럼, 말꼬리 잡는 싸움이 끊임없이이어질 조짐이다. 삼 삼기 노래를 들어보자.진보 청송 진 삼가리/ 영해 영덕 뻗쳐 놓고

우리 아빠 관솔 패고/ 우리 형님 밤참하고

밤새두록 삼은 삼이/ 황쇠등을 못 넘게 됐어

예천 사는 김끝녀 할머니 소리이다. 안동포로 이름을 떨치는 안동에서는 물론 예천에서도 삼 삼기 노래 하면 으레 '진보 청송 긴 삼가리영해 영덕 뻗쳐 놓고' 하는 대목부터 부른다. 진보는 청송 땅이되, 안동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이 고장삼이 특별히 키가 커서 삼가리가 길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진보'의 첫음절과 '진(긴) 삼가리'의 첫음절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두운을 살리고자한 것은 분명하다. 삼 삼는 일이란 안동에서 진보 청송을 거쳐 영해 영덕에 이르는 것처럼 삼을 길게 이어가는 일이라 할 만하다.

우리 엄마 밤참 하고/ 우리 오빠는 관솔 놓고

밤새두록 삼은 샘이/ 한 발이고 반 발일레

안동포 기능보유자인 배분령 할머니 소리이다. 삼 삼기는 밤에도 계속된다. 날씨가 무더운 데다가 전기조차 없기 때문에 마당에다 멍석을 펴고 둘러앉아 두레삼을 삼으면, 관솔가지를 태워 불을 밝혀 준다. 아버지는 도끼로 관솔을 패고 오빠는 관솔을 놓아 불을 피워주며 어머니나 형님은밤참을 해 준다. 이렇게 온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밤새도록 삼을 삼았는데, 그 성과는 '한 발이고 반 발'이거나, '황소 등을 넘지 못한다'. 또는'변소길에도 못 미친다'. 노력과 시간은 많이 소요되지만 성과는 뚜렷하지 않는 것이 삼 삼는 일이다. 이 삼 삼아 베 나가주/ 거창 안뜰 논값 주고

그 남치기 남은 걸랑/ 울아버지 술값 갚세

술값 갚고 남은 것은/ 우리 동상 엿 사 주세

거창 사는 유꼭지 할머니 소리이다. 삼 삼기의 고통을 앞날의 희망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래다. 삼을 삼고 베를 짜서 팔게 되면, 거창안들에 목 좋은 논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위로는 아버지 술값도 갚을 수 있고 아래로는 동생 엿도 사 줄 수 있다. 외상술 마시는 가난한 아버지의형편과 외상엿도 못 먹는 어린 동생에 대한 누이의 배려가 애절하다. 삼베가 한갓 여름살이 입성을 마련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살림살이를 윤택하게 하는 데 경제적 이바지를 한다. 삼베는 목돈을 마련하는 중요한 살림살이 밑천이었다. 잠아 잠아 오지를 마라/ 칠월 질삼 묵어나네

칠월 질삼 묵어나면/ 봄 질삼도 묵어나네

요내 눈에 오는 잠은/ 넘의 눈에 가시라세

이선이 할머니 소리이다. 삼 삼는 처녀들의 야무진 꿈과 가족 사랑에도 불구하고 구름같이 몰려오는 잠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요즘 수험생들이 그렇듯이 삼 삼는 아낙들의 경우도 사실상 잠과 투쟁이다. 노래로 졸음을 일깨우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칠월에 해야 할 길쌈을 묵히면 결국 봄에 해야 할 길쌈까지 묵히게 된다는 말이다. 농사일이 철따라 정해 있듯이 길쌈도 칠월 길쌈과 봄 길쌈이 따로 있다. 따라서 잠이 온다고 칠월 길쌈을 미루어둘 수 없다. 오는 잠을 그냥 쫓는다고 갈 것인가. 자기 눈에 오는 잠을 남의 눈에 가라고 빌어보는 것이다. 아이들 감기가 들면 '이놈의 감기 호박골심부자네 댁으로 가라!'고 하는 주술적 사유와 일치한다.이 삼 삼아 옷 해 입고/ 동무 청해 놀로 가자

잠의 말을 다 들으면/ 칠월 질삼 묵어난다

그냥 잠을 쫓는 것보다는 잠을 안 자고 얻을 수 있는 희망을 그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희망이 강할 때 잠을 이길 수 있다. 처녀들의 꿈은 길쌈을 하여 삼베옷을 잘 차려 입고 동무들과 놀러 가는 일이다. 그러자면 잠의 말을 다 들을 수 없다. 잠과 싸우고자 하는 투쟁의의지가 드높다.

정지문에 걸어놓고/ 날면 삼고 딜며 삼고

적삼 하나 삼았더니/ 섶도 없고 짓도 없네

이웃 년도 거짓이라/ 동시 년도 거짓이라

한금에 삼만 삼았으마/ 섶도 있고 짓도 있지

성주 김봉순 할머니 소리이다. 삼가리를 부엌문에다 걸어놓고 들며 나며 삼았는데, 적삼을 지어보니 베가 모자라서 섶도 없고 깃도 없다.적삼 꼬라지가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친 이웃이나 동서도 결국 거짓말을 한 셈이다. 딴짓을 하지 않고 오로지 삼만 삼았으면그런 일이 없을 터인데, 밥을 해가서 삼도 삼을 작정으로 부엌문에다 삼가리를 걸고 삼 삼기를 하였으니 삼 삼기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부실을 이웃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동네 년도 무정하다/ 방네 년도 무정하다'고 원망한다. 스스로 게을리 한 일을 성찰하지 않고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 원망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억하심정에 빠져들게 된다. 웬술러라 웬술러라/ 칠월 한 달 웬수로세

다 죽어라 다 죽어라/ 삼씨 장사 다 죽거라

다 살거라 다 살거라/ 백묵장사 다 살거라

거창 박사일 할아버지 소리이다. 길쌈을 한다고 나름대로 공들여 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 물론 잠의 유혹도 받고 딴짓도 하며 길쌈을한 탓이다. 그러나 성찰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다보면 아예 길쌈달인 7월달이 원수로 생각된다. 7월만 원수가 아니라 길쌈이 있도록 한 삼씨 장사가주적의 과녁으로 떠오른다. 따라서 '다 죽어라 다 죽어라 삼씨 장사 다 죽어라'하는 저주의 말을 퍼붓게 된다. 반대로 '다 살아라 다 살아라 백목(白木)장사 다 살아라'고 한다. 백목은 흰 광목을 말한다. 삼씨 장사가 다 죽고 광목 장사만 살면 길쌈을 하지 않고 호사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도 같은 식의 흑백 논리가 판을 친다. 그 동안 개혁이 안 된 것이 누구 탓인가. 개혁 주체가 바로 서지 못한 채 군부독재세력과 공조하여 정권안보에 골몰한 탓에 개혁입법도 못하고 정부기관지 대한매일조차 개혁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개혁부진을 야당의 발목잡기와 보수언론탓으로만 돌리니 문제다. 여당의 정풍파 의원들이 국정쇄신을 요구한 것도 그들이 야당이거나 보수언론 편이어서 그럴까. 288개 시민단체가 '개혁실종민생파탄 민주역행의 현 상황을 우려하는 민주 시민사회단체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도 그들 탓인가. 정권교체로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여 제2건국을 하겠다더니, 결국 섶도 없고 깃도 없는 적삼을 지은 꼴이다. 국민지지율 20%에다 개혁입법조차 못하는 판이라면 섶도 깃도 없는 제2건국 아닌가. 여당의 자기 성찰 없는 네 탓은 야당이나 보수언론의 발목잡기나 다름없다. 이것이 곧 국민적 분열과 상극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다. 탄압패든 개혁패든모두 성찰적 비판이 긴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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