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金위원장의 '자신감'

입력 2001-07-31 14:48:00

독재 국가원수의 해외 나들이는 원래 규모가 크다. 우선 돈을 물쓰듯 하는 외에도 수행원의 규모부터가 상상을 초월케 하는 매머드다. 꼭 필요한 인원만 수행시키는 게 아니라 지도자 부재시에 있을 수 있는 변란에 대비, 군 수뇌부는 물론 정보.경찰.검찰과 각 부 장관 등 힘께나 쓰는 부처의 책임자를 몽땅 대동하다보니 자연 대규모가 된다. 과거 아프리카의 인구 200만의 국가 원수가 방한할 때 무려 30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단연 관심거리다. 김 위원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서열3위)은 신병 치료차 중국에 있는데다 김영준 인민군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 무력부장, 이을설 호위사령관이 평양에 남아있다. 게다가 김용순 당비서, 정하철 선전선동부장 등 노동당 핵심이 평양에 남았고 내각 쪽에서는 홍성남 총리, 곽범기 부총리 등이 잔류했다. 말하자면 군, 당, 내각의 핵심인사들이 국내에 남아있어 자칫하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지 않다. 이쯤되면 아무리 난다 긴다하는 김 위원장이라 해도 신경이 쓰일만도 한데 장장 24일간의 장기해외 체류를 밀어 붙이니 우리로서는 이게 웬일인가 싶은 것이다.

▲게다가 김 위원장이 단 하루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평양~모스크바 항로를 그만두고 하필 열흘이나 걸리는 철도를 이용한 것도 수수께끼다. 일부에서는 고려민항의 여객기가 낡은 탓에 신변안전때문에 부득불 철도여행을 하면서 "24일간 평양을 비워둬도 끄떡없을만큼 김정일 체제가 안정돼 있음"을 대내외에 자랑하는 부수 효과도 노리고 있다지만 꼭 그 때문인지 이 또한 황당한 느낌이 든다.

▲어쨌든 일이 이쯤되자 김 위원장이 타고 있는 열차와 평양간의 통신내용에 한.미.일 정보망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첩보위성을 통해 캐낸 신호정보를 분석, 평양의 보고와 김 위원장의 지시내용을 파악함으로써 군부 쿠데타 등 급변 사태에 신경을 쓰고 있다니 새삼 IT시대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신무기를 현금을 주고 사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 김 위원장의 눈에 굶주린 북한 인민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는지 그게 궁금하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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