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폭염에다 밤은 열대야. 청량한 계곡이나 시원한 바다가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일년의 절반을 훌쩍 넘긴 7월말. 휴가철.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한번 쯤 추스려 주어야 할 때다. 켜켜이 쌓인 일상의 피로를 자연에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은 벼르고 벼른 곳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유명 피서지는 이미 사람들로 초만원. 더위도 더위지만 휴가 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 소박한 바람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에 직면한다.
동해안. 그중에서도 울진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아직은 여유있게 자리를 차지할 수있는 계곡과 바다가 적지 않다. 울창한 솔숲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데다 해수욕과 온천을 오가며 즐길 수도 있다. 올 여름 더위도 식히며 가슴 한가득 활력을 담아올 수 있는 울진의 숨겨진 곳으로 떠나보자.
▨왕피천 상류 구고동 마을(속칭 굴구지)=산골마을 치고는 반듯하다. 승용차도 보이고 TV시청을 위한 위성안테나도 보인다. 군청에서 제공해주는 12인승 버스가 하루 2번씩 바깥 세상과 연결해준다. 어른 걸음으로 1시간 가량 걸리는 오지만 아니라면 여느 농촌보다 살갑게 다가온다.
주변의 위압적인 산들에 둘러싸인 구고동마을(근남면 구산3리)은 33가구(80여명)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지난해 계단식 경지정리로 벼농사도 밭농사 못지 않다. 예부터 아홉고개를 넘어야 한다 해서 굴구지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지난번 가뭄때도 물걱정은 끄떡 없었다고 한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왕피천 덕분이라는 것. 이 마을의 주수입원은 송이채취. 가을 한달(9월말경)은 거의 산속에서 움막을 치고 지낸다는 설명이다.
이장 김정필(35)씨는 "산림계 판매수익금은 똑같이 분배하기 때문에 1가구당 1명씩 의무적으로 송이 채취에 나서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이 없을 정도"라고 한숨을 내쉰다.
마을 아래를 지나는 왕피천 계곡은 어디에 자리를 잡더라도 고즈넉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예쁜 자갈돌을 밟으며 다슬기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굴구지 마을로 가는 길은 급커브와 오르막·내리막의 연속이다. 울진읍에서 영덕 방면 성류굴 남쪽 진입로 왕피천관광농원 표지판이 보이면 핸들을 꺾는다. 첫번째 마을에서 가는 길을 단단히 물어봐야 한다. 어디에도 구고동 마을 표지판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꼬불꼬불한 산길, 손에 땀이 흥건하다. 왕피천을 곁에 두고 5㎞ 남짓 울창한 수풀사이를 40분쯤 달려 마을을 찾았다. 산골마을 어느집이든 민박을 청하면 인심좋게 고개를 끄덕인다. 인근에 왕피천 관광농원과 구산리 삼층석탑이 있다. 이장댁 054)782-4462.
▨소광리 계곡=울진군 서면의 소광리 계곡은 불영계곡의 바로 옆줄기다. 울진읍에서 36번 국도 봉화방면으로 달리다 통고산 자연휴양림에 못미처 소광리 덕우광업소 표지판을 보고 광천교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비포장길이 잠깐씩 앞을 가로 막는다. 대광천 물줄기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울진소나무(적송) 군락지가 우람한 자태를 자랑한다. 계곡을 따라 승용차로 가면 30분쯤 소요된다. 적당한 곳까지 간 다음 승용차는 세워두고 계곡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는 묘미도 일품이다. 소광 1리, 소광 2리 자연부락을 합쳐 76가구(180여명)가 흩어져 있다. 물론 민박도 가능하다.
소광리 계곡은 불영계곡 못지 않은 송림숲과 맑은 계곡물이 자랑거리다. 두가족 정도는 넉넉히 앉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위와 큰 바위에 갇혀 군데군데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는 아이들 물놀이 하기에 제격이다. 인근 불영계곡의 유명세에 가려서인지 이쪽 계곡으로 찾아드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어 최소한 사람 구경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울진이 남편의 고향이라 한 번씩은 꼭 온다"는 양순영(33·대구시 북구 동천동)씨는 "아이들과 함께 다슬기를 주우며 물속을 헤매다 보면 한나절이 금방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주변 명소=울진은 망양해수욕장 등 군지정 8개 해수욕장 이외에도 군데군데 간이 해수욕장이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사동, 봉산리, 직산해수욕장 등이 그곳이다. 다만 안전과 편의시설이 부족한 게 흠이다.
울진군 서면 하원리의 불영계곡은 명승 제6호. 계곡 갈피갈피를 헤집고 들어가면 주변의 우람한 바위군과는 또다른 부드러운 속내를 감추고 있다. 물줄기 한자락이 불영사로 흘러든다. 불영사를 둘러보려면 1㎞ 남짓 울창한 솔숲길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밑둥치만 남은 거대한 굴참나무가 보기에도 5m가 넘는다. 제 수명이 살아 있다면 장대하기 그지 없을 이 나무는 예전엔 천연기념물이었다고 한다.
▨가는 길=대구에서 중앙고속도를 타고 영주를 거쳐 봉화∼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 국도를 타면 270여㎞의 장거리 여행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봉화쪽에서는 광비천, 동쪽인 울진으로는 불영천이 따라 붙는다. 산과 물이 어우러지되 험한 길도 없으며 치솟은 절벽과 그 절벽이 되비치는 물살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금방 울진이다. 4시간 가량 소요된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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