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외규장각 도서 맞바꾸기

입력 2001-07-27 15:22:00

조선조의 정조는 국정을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즉위 직후 규장각을 설립했다. 왕실의 권위와 관련된 물품들인 선왕들의 친필 문서, 궁중의 주요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한 어람용 의궤, 옥쇄 등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1781년 강화도에 설립한 것이 외규장각이었다. 프랑스는 선교사 처형에 항의하면서 이를 구실로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1866년 강화도에 상륙했으나 우리 군대에 참패해 철수하면서 외규장각 도서 5천67점과 갖가지 보물을 약탈하거나 소실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들은 바로 병인양요 당시 약탈해간 문화재들로 우리의 국가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불타버린 문화재들은 살려낼 방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으로 강탈해간 도서들은 당연히 되돌려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상징적으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만 돌려준 적이 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파리에서 열린 한·불 간 제4차 전문가 협상회의에서 두 나라 대표들이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그에 상응하는 국내 고문서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반환하기 위한 실사 착수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에 따라 9월부터 양국 전문가들에 의해 상세한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파리에 가서 편리하고 필요한 시간만큼 실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번 파리 협상회의에서 지난해 10월 양국 정상회담의 기본 합의 사항인 '유일본 우선 원칙'을 문서화하고 실사를 착수하기로 한 것만도 진전이며,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도 있다. 프랑스 소장 어람용 의궤는 국내에 복본이 여러 권 있는 비어람용 의궤를 대여하고, 프랑스에만 있는 유일본에 대해서는 같은 시기(1630~1857년)에 만들어진 비어람용 의궤 중에서 한국에 복본이 여럿 있는 것을 상호 대여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이 '약탈당한 물건들을 왜 우리 물건들과 맞바꿔야 하느냐'고 반발하는 상황이듯, 근본적으로 우리 문화재를 찾아오는 방식이 잘못된 느낌이다. 프랑스는 이 문화재들을 자기네 국내법에 따라 공공재산으로 등록, 돌려주기는커녕 빌려주는 조건도 우리의 다른 문화재를 빌려주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다. '완전 반환'만이 우리 문화재의 존엄과 자존을 지키는 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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