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라운드 10년 우리농업 어디로 가고 있나-

입력 2001-07-24 14:09:00

(9)경영난 농산물 가공공장

경북 경산시 남천면 대명리 경산대추 영농조합의 텅빈 공장에서 만난 최상순(67) 조합장의 주름진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가슴속 묻어 두었던 말들이 쏟아졌다.

"대기업이 너도나도 달려 들고 정부는 돈만 대주고는 뒷짐을 지는데다 IMF로 자금줄이 막히니 견딜 재간이 있나요. 또 당초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는 실수도 범했고…".

지난 95년 공장준공 뒤 97년부터 두번째 대표로 떠맡았지만 그해 곧바로 IMF로 24억원짜리(국비보조 9억원, 융자 8억원, 자부담 7억원) 공장을 놀려 가슴이 답답할 뿐.

UR 이후 정부가 가공산업 육성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자 경산지역 대추농가들이 묘안을 짜냈다. 93년 조합을 만들어 경산의 풍부한 대추와 공장주변 맥반석을 통한 맑은 물을 이용, 대추음료수를 만들기로 한 것.

음료수 공장은 연간 300만캔(매출 9억원)까지 생산할 수 있게 8억원 짜리 라인을 깔았다. 또 소포장의 마른 대추를 생산, 판매하는 시설도 마련했다. 이와함께 껍질을 깐 생대추를 통조림으로 만들어 팔 계획도 세웠다.

처음은 좋았다. 대추음료는 96년 한때 최고인 200만캔(6억원)을 생산했고 소포장 대추도 2억원 어치 팔아 적지만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IMF에다 대기업의 유사제품 생산과 파상공세로 매출은 급락했다. 적자행진도 계속됐다.

생산은 바닥을 헤맸다. 지난해 30만캔(9천만원), 올해 20만캔(6천만원)에 그쳤을 뿐이었다. 최고 2억원(97년)까지 올랐던 소포장 판매도 지난해는 절반으로 줄었다그러다 보니 공장가동도 한달 정도였으나 올해는 5일만에 끝났다. 올해 판매할 분량 20만캔을 다 생산했기에 언제 다시 공장을 돌릴지 모른다. 음료수가 모두 팔릴 때까지 공장을 놀릴 수밖에 없는 형편. 최 조합장은 직접 주문받고 배달도 한다.최 조합장은 "아무래도 너무 크게 시작한 것 같고 겨우 물건 만들어 놓으니 대기업들이 사정없이 달려드니 어렵기만 하다"고 한숨 지었다. "게다가 농협은 회원 조합이 만들어 놓은 같은 제품을 판다고 판매에 도움을 주지 않고 정부도 나몰라라 하니 투자한 시설이 아깝다"고 한탄했다.

최 조합장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개발중인 대추넥타와 생대추 통조림에 기대를 걸고 자금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영농법인을 맡고 난뒤 전재산도 압류당했다는 최 조합장은 "자금만 뒷받침되면 800여 조합원들과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며 지원을 바랐다.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 청송지두 영농조합법인 대표 김규수(62)씨도 "그간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하누"라면서 고생담을 털어 놓았다. 청송에 많이 나는 콩을 이용, 무공해 건강식품 '청송 콩나라'를 생산하기 위해 지난 94년 법인이 설립됐다.풋콩을 삶아 급냉동시킨 뒤 콩의 푸른 상태를 유지, 단백질이 높은 건강식이나 미용식 및 술안주, 간식용 등으로 활용하기 위한 식품이 바로 콩나라. 조합은 법인설립 이듬해 사업비 10억원(정부보조 5억원과 융자 3억원, 자부담 2억1천만원)으로 공장을 지었다.

생산 첫해부터 97년까지 3년간은 그런대로 내리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장운영 과정에서 불거진 자금문제 등으로 대표가 다섯번이나 바뀌는 우여곡절과 IMF라는 복병으로 경영이 휘청거리자 97년 12월 김씨가 조합을 떠 안았다.

김 대표는 해외시장에 눈을 돌려 98년부터 99년까지 일본에 18t가량 수출에 나서기도 했지만 수지가 안맞아 지난해부터는 중단했다. 얼어붙은 국내시장과 수출 채산성 문제로 경영은 말이 아니었다. 98년부터 적자였다.

운영자금이 모자라 이리저리 빌려 쓴 융자금으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이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연6%의 운영자금을 빌려 쓸 수 있지만 담보능력이 모자라 그림의 떡. 김 대표는 "지난해 연 6%짜리 1억3천만원의 자금배정에도 못 썼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부의 무관심도 탓했다. 월 200만원의 전기료가 부담스러워 수차례 건의, 농업용으로 전환을 요청했으나 매번 묵살되다 지난해부터 혜택을 받아 월 50만원에 그치고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대표는 또 정부가 관심을 갖고 사업성이 있는 조합에 대해 추가지원을 아끼지 말아 줄 것을 주문했다.

"이제 조금 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차광삼(48)공장장은 "생산능력이 연200t이지만 98년 50t, 99년 80t밖에 생산 못하다 지난해는 150t, 올해는 200t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흑자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조금씩 나아지고 이제는 깔딱 숨이라도 겨우 쉴 정도지만 여전히 남은 5억원의 빚은 여전히 짐"이라 말했다.

인근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푸른솔 영농조합 김제훈(48) 대표도 답답할 뿐이라 말했다. 국비보조 5억원과 융자금 3억원 등 10억원을 들여 연간 270t 생산능력의 고춧가루 공장을 지난 94년 문 열었다.

그러나 경영과 판매난으로 1년에 고작 10~20t 생산에 그쳐 사실상 공장을 놀리다 시피했다. 때문에 수천만원짜리 기계들은 녹슬어 갔다. 판매난과 경영난이 계속된 뒤 김씨가 97년4월 경영권을 넘겨 받아 2억원으로 일부 기계들을 교체하는 시행착오를 겪었고 97년에는 IMF까지 겹쳤다.

정비를 마친 김 대표는 98년부터 발벗고 시장개척에 나섰다. 98년 150t이었던 생산량을 99년 180t, 2000년 220t으로 늘렸다. 지난해는 4억원을 들여 미숫가루 공장도 지었다. 다행히 지난해 조합설립 뒤 첫 흑자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올해는 고춧가루 300t을 생산, 절반을 일본에 수출할 계획"이라면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당초 조합이 너무 크게 출발하는 바람에 경영이 말이 아니었고 정부지원도 단발로 끝나 경영이 부실했던 것 같다"면서 "아직도 금융비용 부담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라 말했다.

이들과 달리 경산시 유곡동에서 95년 조합을 만들어 98년 9월 국비 보조 5억원 등 11억원을 들여 3천평땅에 포도가공에 나섰던 한 조합은 2년을 못 넘겼다. 지난해 3월 문을 닫고 법원경매가 진행중인 이 조합은 수입품과의 경쟁에다 국산원료 사용에 따른 생산원가 상승, 운영자금 확보 어려움 등 악재로 결국 무너지고 만 것. 경산시청의 이재욱씨는 "경영능력 문제와 고금리 등 외부여건도 좋지 경영난의 부닥친 것"이라 설명했다.

지난 93년 점촌시가 37억6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사과칩과 통조림 등 농산물 가공공장을 설립했던 점촌도시개발공사도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점촌과 문경의 통합뒤 98년 문닫았다. 문경시청 지역경제과 정병용(39)씨는 "현재 청산작업이 진행중인 문경도시개발공사는 당시 사업의 타당성과 판로문제 등 여러 경영여건이 좋잖아 문닫는 실패를 겪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농산물 가공공장의 경영난과 부실은 이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농림부가 지난 97년 전국 1천150개의 정부지원 농산물 가공공장에 대한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가동중인 1천개의 51.5%(515개)가 경영부실 또는 경영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농림부는 99년말로 1천73개 중 217개의 부실공장을 정리했다.

경북도청 유통특작과 박우상씨는 "전반적 경영난으로 많은 가공공장들이 부실,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또 농림부 식품산업과 이득섭 사무관은 "앞으로 정부지원 가공업체에 대한 관리를 강화, 부실공장은 퇴출시킬 계획"이라면서 "지난해 가공업체의 경영실태도 현재 조사중"이라 말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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