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잃어버린 얼 되찾자

입력 2001-07-21 00:00:00

의학을 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나누는 것이다. 의학도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기초의학의 발전이 임상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역사적으로 좋은 예가 있는데, 바로 세균학이라는 기초의학에서 발전시킨 멸균소독법이라는 기술이 임상의학인 외과의 수술법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와 같이 기초의학은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다지는 것과 같아서 집을 다 짓고 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이 기초가 어떠냐하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와 인류의 건강지표가 될 것이다.

인문학 푸대접

그러면 우리 사회의 기초는 어떨까? 기초의학이나 기초과학,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문과 인간 삶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떠한가를 생각하면 매우 실망스럽고 한심스러울 정도이다. 이와 같은 기초의 부실은 우리 사회가 성장할수록 위태로워지는 것이, 마치 집을 지을 때 기초를 제대로 닦지 않아서 집이 높이 올라갈수록 위태로워지는 것과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지금 우리를 지탱해주던 고유한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단군의 홍익인간과 삼국시대의 풍류도가 있었고, 우리의 고유한 정신으로 확대 재생산된 불교와 유교가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고약한 이웃 일본의 국권 침탈과 핍박으로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고, 또 현대 과학을 자율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비록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엎친 데 덮친 꼴이 된 상태에서 서양의 저질 문화와 저질 자본주의가 도입되어 우리의 고유한 정신은 낡은 것, 고루한 것으로 취급되어버렸다. 그 뒤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좥잘살아 보자좦는 구호 아래 좥돈좦이라는 것을 모든 가치 위에 두었고, 그 덕에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온 국민들이 돈을 찾아 눈 벌겋게 설치는 사이 우리 사회는 밑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고,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이 인간관계의 기본인 예의 염치마저 잊어버리게 하였다. 그 결과 가정이라는 사회의 기초부터 돈의 위력 앞에 맥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IMF 사태 이후 극대화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보았다.

기초부실 나라망쳐

돈이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튼튼한 기초 위에 돈이 있어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라는 사회 생활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온 돈이라는 것은, 마치 어린애가 큰칼을 들고 있는 것과 같아서, 남은 물론 자신까지 해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우리는 경제가 성장을 시작하던 70년대부터 생긴 졸부들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보았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독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이제는 우리들, 특히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며 또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야 된다. 그래서 잃어버린 우리의 좥얼좦을 되찾아서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줌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선대에 대해 가졌던 부끄러운 조상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사회를 이끌어 갈 인프라(Infra)를 굳건히 하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을 토대를 마련해야 하다. 우리는 그간 너무나 서둘렀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루어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질(質)보다는 양(量)에 치중했던 부끄러운 관행을 떨쳐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얄밉지만 가까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본의 예를 들어보겠다. 그들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가장 먼저 한 작업이 바로 그때까지의 모든 한문전적을 국역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인문학에 있다는 지도자들의 통찰 때문이었다. 그것이 오늘의 일본이 있게 된 기초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을 향한 초석이 되고, 삶의 질을 높여 줄 기초가 되는 인문학에 관심과 투자가 많아지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 조호철(동양고전연구소 이사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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