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가 향취 가득한 고가촌

입력 2001-07-19 14:18:00

◈전통마을을 찾아서-봉화 닭실마을마치 몇 백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놓은 듯 고색창연한 고가촌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화읍 유곡1리 닭실마을. 풍수상 금닭 2마리가 죽지를 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형국(金鷄抱卵形)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하회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 가운데 하나로 꼽은 곳.

이 마을은 원래 파평 윤씨가 살던 곳이나 그 외손인 중종 당시 우찬성 권벌(1478-1548)이 기묘사화때 관직에서 물러나 1520년 어머니 파평윤씨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됐다.

닭실 권충재 종택에는 서재인 한서당과 청암정이 있다. 청암정에는 충재의 글과 미수 허목, 퇴계 이황, 번암 채제공, 백암 김륵 등 조선 중후기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의 글을 새긴 현판 10여개가 걸려 있어 자연을 벗삼았던 영남 문필가들의 향취가 느껴진다.

목수 신영훈은 "춘양목으로 지은 충재 종택은 강직한 선비의 삶과 같은 단정함이 배어 있고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을 따로 꾸민 구조는 유교사회의 품격을 일깨우며 후원의 장대한 바위와 동다리를 건너 바라보는 정자는 봉화의 자랑인 맑은 물과 어울려 심기를 탁 트이게 한다"고 극찬했다.

이 종가 유물각에는 중종실록 편찬 자료로 이용된 일곱권의 충재일기(보물 제261호)와 중종에 하사 받은 근사록( 보물 제262호), 15종 184책의 서적류, 임금이 내린 교서, 문과급제 답안지 등 15종 274점의 고문서(보물 제901호), 학봉 김성일의 글씨 등 8종 14점의 서첩과 글씨(보물 제902호) 등이 보존되고 있다. 한 개인이 이처럼 자신과 관련된 귀중한 유물을 많이 남긴 것은 충재가 거의 유일하다.

삼계리에서 지류를 따라 1km 남짓한 석천계곡에는 석천정사와 갱장각 등이 물과 바위, 아름드리 소나무와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다.

닭실마을에는 3가지 자랑이 전한다. 산천의 아름다움과 문장·명필이 대를 잇고(文筆不絶), 충의와 정절의 고장이라는 것. 특히 충재의 후손들 중에는 문집과 유고를 남긴 사람이 90명이나 된다. 가히 영남지방에서는 '문필마을' 이라고 해도 지난친 말이 아닐 정도다.

닭실에는 또 6기(寄)라 하여 권두인의 문장, 두경의 시, 두웅의 글씨, 만의 재주, 정침의 충성, 정교의 그림을 꼽는다.

권벌은 죽은 후 선조때 영의정으로 추증된다. 이와 함께 임금이 그에게 4대까지만 지내는 제사와는 달리 대를 초월해 영원히 모시는 불천위(不遷位)제사를 지내라는 명을 내린다.

불천위 제사는 문중의 큰 행사. 문중 아낙들이 모여 제사음식을 준비한다. 제사음식중 가장 정성들이는 것이 한과. 분홍에서 검정까지 다섯가지 모두 제 색을 내야 하고 모양도 나야 한다. 이때문에 이곳 한과는 제사음식의 꽃이다. 종가 내림 손맛인 것이다.

현재 이마을에는 30여 가구의 안동권씨 문중들이 500여년 동안 전통 제례법에 따라 제를 올리는 등 조상의 전통을 간직해 이어가고 있다.

봉화·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