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주부들 취업난-'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려워요

입력 2001-07-18 00:00:00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사태 이후 몰아닥친 감원·감봉 파고로 남성 가장 혼자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지면서 '맞벌이'의 필요성이 어느때보다 절박해진 요즘이다.

그러나 결혼 후 취업 공백이 있거나 직장 경험이 없는 여성들이 뒤늦게 '반듯한 직장'을 구하기란 그야말로 쉽지 않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시 북구 대현동 대구여성인력개발센터 내 베이비 시터(아이를 돌봐주는 사람) 강의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취업 열기' 탓인지 10여명의 주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조순향(32·여)씨는 아직 자녀가 어려(7·8세) 당장 일할 여건은 되지 않지만 앞으로 1, 2년내 일자리를 갖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집안 일만 하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남편 혼자의 벌이로는 생활이 빠듯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취업 경험과 내세울 경력이 없어 생각 끝에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베이비 시터일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 3명을 둔 조영숙(41·여)씨. 결혼 전 회사에서 경리 일을 한 경험 밖에 없는 그녀는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태기 위해 쌀 장사, 보험설계사 등의 일을 해봤으나 모두 실패했다.

"4년 전 시작한 장사는 불경기로 포기했고 보험설계사 역시 적성에 맞지 않아 남들처럼 실적을 많이 올리지 못했죠. 우리 사회에는 전문직 여성이 아닌, 평범한 40대 주부가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조씨의 말은 일하고 싶지만 일거리가 없어 애태우는 주부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대구여성인력개발센터 이선영 간사는 "비교적 취업이 잘되는 편인 베이비 시터, 피부미용전문가, 조리사 등도 일자리가 부족해 경쟁이 치열하며, 더구나 기업체 사무직·재택 업무 등을 선호하는 고학력 여성에겐 취업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다"고 전했다.

이모(34·여)씨는 "요즘은 30, 40대 주부가 직장을 갖지 않으면 남편이 눈치를 준다는 말이 주부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며 "'돈을 벌어왔으면…' 하는 남편의 은근한 기대가 있지만 일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스트레스만 쌓인다"고 털어놨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신모(31·여)씨. 미혼 시절 영어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5년간 편집일을 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5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무능력함을 처절히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IMF 사태 이후 남편의 월급이 줄고 아이에게 드는 비용은 늘어 일자리를 찾으려 해도 전공과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남편의 짐을 덜기 위해 식당일이라도 하고 싶지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가슴만 답답합니다".

지난 4월 대구의 패션몰 베네시움이 모니터 요원 신청을 접수한 결과, 5명 모집에 무려 350명이 지원, 7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주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 여성들도 상당수를 차지, 여성 취업난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같은 실상은 정부의 통계에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2000년 경제활동인구연보'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48.3%, 실업률은 3.3%로 전년보다 각 0.9% 포인트씩 증가했다. 즉 일을 하고 싶은 사람(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취업자와 실업자)은 늘었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여성 인력이 사장되고 있는 것은 여성 개인은 물론 한 가정, 나아가 국가 전체의 인력 활용 측면에서 큰 손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4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학력이 높을수록 여성들의 노동단절 현상이 심해 가계는 물론 국가 차원의 인력 활용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대졸 여성들의 취업률은 졸업 직후인 20대 중반을 정점으로 80%까지 치솟은 뒤 하강곡선을 그려 30대 중반에 이르면 40%로 추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중·고졸 여성들의 취업률이 20대 후반 40%대에서 40대 초반 60%대로 치솟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 박사는 "여성들, 특히 대졸여성들이 취업 뒤 몇년 안에 결혼하고 직장을 그만둔 뒤 직장에 복귀하려해도 가사와 육아, 경직된 기업환경 등의 이유로 재취업이 어렵다"며 "여성과 직업, 여성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교육 등 여성을 대상으로 조기 경제활동 교육과 여성 인력 활용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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