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한 작가를 두고 '가당찮은 인물'이라고 혹평했는데, 나는 작금의 한일관계가 참으로 가당찮다고 생각한다. 역사교과서 왜곡에 이어서 남쿠릴열도에서 우리배의 꽁치잡이 금지,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정치인의 참배 등이 한국을 위시한 주변국들의 정치적 민감대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역사교과서 왜곡의 '수정불가' 방침은 참으로 가당찮은 한일관계의 마각을 드러낸 사건이다.
일본은 역사적 사실과 해석은 별개, 즉 관점의 차이를 인정해야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못난 아시아를 떠나 세련된 유럽이 되고싶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데도 우리는 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둘러싸고 구체적인 전략과 대응전술을 모색하기 보다 온통 다혈질적 반일감정을 쏟아내는데 과연 대응방식 중 최선책인지를 심각하게 따져봐야겠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8개 항목, 우리가 35개 항목의 수정을 요구했으나 있으나마나한 우리 요구중 2개만 빼고 모두 수정불가로 결판났다. 이에 대한 양국의 반응양식이 사뭇 다르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과 관련하여 강하게 반발하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일본 연립 3개 여당의 간사장 3명이 고이즈미의 친서를 휴대하여 방문했다.
중국은 국가주석 장쩌민에서부터 부주석 첸치천, 외교부장 탕자쉬안까지 줄줄이 나와 일본연립여당의 간사장 3명을 조어대에서 그야말로 칙사대접했다. 그러면서 장 주석은 "역사에 불을 붙이면 엄청나게 폭발할 수 있다"는 중국 특유의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반면 이들이 김 대통령을 찾았을 때 청와대는 문전박대했다.뿐만 아니라 일본 여당 간사장 3명은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으로부터 "주일대사관을 폐쇄하자는 논의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가하면 한국 외무장관에게는 "잔머리를 굴리는 수작"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1세기전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양의요,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의 일원이었던 알렌이 서술한 그대로 성급하고 다혈질적 모습을 노출한 것이 중국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서양속담에 실수의 5분의2는 타인의 것이고 5분의3은 내것이란 표현이 있다. 남을 비난할 때 우리 손의 모습에서 손가락 두개는 상대를 가리키고, 나머지는 자신을 지칭하지 않는가. '내탓이오'(MeoKulpa) 운동의 의미를 반추할 때가 지금이라 생각한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이슈로 부각된 것이 석달전인 지난 4월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정부당국은 98년의 한일동반자 관계 선언에 너무 집착했고, 지난 95년에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불사한다"는 무라야마 담화를 너무 맹신했음을 고백해야한다. 양국 수뇌가 맺은 약속에 매달려 설마하다가 정말 설마가 사람 죽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국제관계는 힘이 말하는 세상이다.
지금 일본은 고이즈미라는 희대의 독선적 소신총리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기존의 정치적 관행이나 인습을 무시하는 예측불허의 무당파 총리이다. 그는 오직 대중적 인기만 상대하는 포퓰리스트로 최근 일본 국민의 80%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거기에다 보수우경화를 표방하는 미국의 부시정권이 강력하게 후원해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런 인물을 과거 오부치 총리나 무라야마와 동일시했다면 그것부터 우리의 외교적 실책 혹은 대응력 부족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우리가 냄비끓듯 콩볶듯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꺾일 것을 기대한다. 이제 우리는 말의 성찬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한다. 지난번 최상용 주일대사를 소환하듯이 그렇게 칼을 뽑았다가 무도 썰지 못하는 용두사미식 대응을 지양해야한다. 천천히 그러나 결연히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문화적 방법으로 극일을 시도해야한다.
지금 일본 열도는 "고이즈미 자네가 계속 총리를 하게, 그래도 안되면 이시하라(동경도지사)를 구원투수로 내겠네"의 음모적 멘탈리티가 지배하고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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