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원작 못지않게 영화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설원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의사 지바고와 라라의 안타깝고 기구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 세계 청춘남녀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오마 샤리프(지바고 역)의 깊고도 따뜻한 눈매, 쥴리 크리스티(라라 역)의 청순하면서도 열정적인 표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사람을 사랑한 두남자
나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라라의 남편 스트렐리니코프에 대해 전혀 주목하지 못했다. 혁명의 선봉에 선 투사이자 라라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실현하고자 온 생애를 바친 그를 영화는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와 꼭 다문 입술로 그렸을 뿐이다. 그 후 오랫동안 나는 라라와 지바고만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강의 중에 학생들과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읽게 되었다. 라라를 떠나 보내고 시골집에서 추위와 고독 속에 시를 쓰고 있던 지바고, 혁명군 사령관이었지만 모함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된 스트렐리니코프,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가 현실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장면이었다. 스트렐리니코프는 라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지바고에게서 그녀에 대한 작은 추억이라도 발견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지바고는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라라가 스트렐리니코프를 참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살아서 단 한번이라도 스트렐리니코프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에 대한 조그만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지구의 반대편까지 무릎으로라도 기어가겠어요"라고….
작가의 일방적 주장 경계
라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산 이 실패한 혁명가의 최후에서, 다음날 아침 차가운 눈 위에 선홍빛 피를 떨군 스트렐리니코프의 모습에서 나는 지바고에게서와는 다른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난 스트렐리니코프가 슬퍼"하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고 학생들도 다소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인간미와 그의 사랑 또한 하나의 훌륭한 삶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작품에서 일방적으로 그를 밀어내서는 안되며, 지바고와 대비되는, 어쩌면 지바고의 일면성을 보완하는 인물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공감한 것이다. 시쳇말로 '한 삶' 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요즘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독서 방법에 다소 이의를 달기 좋아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쏟아 부은 작가의 열정이나 의도에 대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무슨 삐딱 고기라도 먹은 것은 아니다. 문학은 작가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가득찬 것이 결코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또 문학은 항상 자기 이상의 것, 자기 아닌 것에 대해서도 넉넉하게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소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에서 주제를 확정 짓고 작가 사상을 추출해내고 그에 걸맞은 주인공을 도드라지게 부각시키는 것은 그리 좋은 감상법이 아니었다. 즐겁게 읽고 감상하고 느끼는 가운데 자유롭게 문학을 향유하는 행위, 그 자체가 문학 행위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작품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중요하지 못한것'도 중요
주인공과 보조 인물과 수많은 사연과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것'만을 뽑아내어 기린다면, 뽑히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하는 다른 것은 어찌한단 말인가. 혹시 그런 독서법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방식마저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급기야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미리부터 배제하고 눌러버려서 아예 근원적으로 '중요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누구라고 생각되고 있는지?
이강은(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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