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 국어도 ×, 영어는 ○, 과학은 △…".한 여중학교 운동장 옆 벤치에서 서너명이 떠들고 있었다. 교사들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슬쩍 다가가서 "선생님에 대한 평가 기준이 뭐냐"고 물었더니 "우리도 알 건 다 알아요"라고 말했다. "수업 시작 때 꼭 2, 3분 늦게 들어와서, 이 반은 오늘 어디 할 차례냐고 묻고, 잘 하는 애 한테만 질문하고, 설명 못 알아들으면 학생들만 나무라고, 그러면서 과제만 잔뜩 내고…".
그 학교 교사에게 학생들의 이런 생각들을 되물었다. 교직생활 10년째, 30대 후반이라는 그는 "학생들은 언제나 교사를 평가해 왔잖아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뿐이죠"라며 말머리를 돌렸다. "교사 임용 후 보통 5년까지는 소명의식을 갖고 열심히 해 보려고 하죠. 교재 연구, 수업 준비, 평가 하나하나에 목숨을 거는 자세로 임하지만 이내 지쳐버립니다. 수업 잘 하는 것보다 행정 처리 능숙하고, 연구 과제 따 오고, 윗 사람들한테 잘 보이는 게 편하고 승진에도 도움이 되니까요"평교사로 퇴직한 서명섭씨는 "수업이나 일 좀 잘 한다 싶으면 장학사 시험을 치고, 교감 교장 승진하려 애쓰는 분위기이고 보니 학생들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 된 느낌"이라고 안타까워 했다.최근의 교육 위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교사들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신뢰가 떨어진 점도 크게 작용했다. 물론 교사들만 비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학원에서 교과 내용을 먼저 배우고, 시험 준비까지 해 주는 상황에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집중할 리 없다. 교사들을 학원 강사와 비교하는 좋지않은 버릇도 생겼다.
교육청을 비롯한 온갖 기관에서 수십개의 공문이 쏟아지고, 처리해야할 잡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도 교사 본연의 일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한 과학과교사는 "과학탐구대회 한 번 참가하는데 꼬박 두 달 걸립니다. 결과가 나빠선 안 되니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죠. 발명전시회다 뭐다 1년에 서너번 행사에 시달리는데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있나요".이런 속내를 모르는 학생, 학부모, 일반인들이 일방적으로 교사들 탓만 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몇몇 사례들을 보면 교사들도 이같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대표적인 게 부진아 문제. 시교육청이 올해 중.고교 입학 예정자를 대상으로 학력진단평가를 실시한 결과 중학교 입학 예정자 가운데 분수 덧셈을 못 한 학생이12.8%나 됐다. 고교 입학 예정자 가운데 초등학교 과정의 최소공배수조차 모르는 학생이 7.3%, 중학교 과정의 분수 계산을 못한 학생이 21%나 됐다.
손영균 교육위원은 "시교육청이 부진아 지도에 연간 10억원 이상 들이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대구 교육이 어딘가 심하게 곪아 있다는 뜻"이라며"한 번 학습 결손이 생기면 평생 보충하기 어렵다는 점을 교사들이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일반계 고교의 지도 성과를 가늠하는 입시 결과를 놓고 봐도 대구 교육의 일그러진 측면은 쉽게 드러난다. 올해 서울대 합격자가 20명 이상인 고교가 5개인가 하면 5명이 안 되는 고교(달성군 제외)도 7개나 됐다. 200명 이상을 경북대에 합격시킨 고교가 있는 반면 50명도 못 보낸 고교도 있었다.
한 공립고 학부모는 "사립고에 비해 공립고 입시 결과가 대체로 나쁜데 학교서는 원칙과 교육청 지침만 따져 공부를 제대로 안 시킨다"면서 "어느고교에 배정받느냐에 따라 대학 진학이 달라지는 건 누가 책임지느냐"고 했다.대구의 한 사설학원은 두달에 한번씩 강의 평가를 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수강생들이 내리는 평가 점수가 핵심. 이에 따라 강의 시간표가 새로 짜여지고, 기준치 이하 평가가 세차례 나오면 해고된다. 사교육 기관의 방식을 도입하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교육 수요자를 중심에 두는 철저한 상업주의에서도 대구교육이 새겨볼 부분은 적지 않은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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