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밤 11시 대구 봉덕동 한 게임방. 10여명의 청소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던 김모(16.고2)군은 "오늘은 토요일이라 밤을 새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평일에도 2, 3일에 한번씩은 꼭 와서 '리니지' 게임을 하다가 새벽 1시쯤 집에 간다는 김군은 학교 컴퓨터 교육에 대해 "배워봤자 써먹을 것도 별로 없고, 속도도 너무 느려서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고 말했다.
대구 시내 수천개나 되는 게임방은 초.중.고생들에게 일종의 자유공간이다. 대학생이나 직장인은 극소수. 오후 3시쯤 초등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해, 시간이 갈수록 중.고생들이 자리를 채운다.
지난해 9월 청소년보호위원회 조사 결과 하루 3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청소년(10~18세)이 조사대상자의 20%에 이르렀고, '중독'이 의심되는 청소년이 11%나 됐다. 한 교실에 너댓명은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못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세계 선두권의 교육정보화 수준을 자랑하고, 대구시 교육청은 전국에서 가장 앞섰다고 자부하지만 정보화의 이면에 숨겨진 그늘은 의외로 크다.
물론 외형은 선진국에서도 감탄할 정도로 갖춰졌고 앞으로도 계속 업그레이드 된다. 지난달 발표한 정부의 2단계 교육정보화 방안에 따르면 2005년까지 학생 5명당 1대꼴로 PC가 보급되고, 인터넷 속도가 현재 512Kbps에서 2Mbps로 4배 이상 빨라진다. 내년부터 3년동안 매년 11만명의 교사에게 2단계 정보화 연수를 실시한다. 그때쯤 시설과 활용 면에서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교육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사들의 이야기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학교 실습실 컴퓨터는 기종이 구식으로 교체가 더딘 데다, 쓸만한 소프트웨어도 별로 없어 학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지난 5월말 현재 대구 시내 학교의 실습용 컴퓨터 보급률은 목표의 79% 수준. 그나마 이 가운데 20%는 거의 쓰지 않는 486이하 기종이다. 고교의 경우 486이하가 30%를 넘는다. 회선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도 특정 시간대에 이용이 집중되는 학교 특성상 한계가 있다. "학원이나 게임방보다 열배 이상 고물"이라는 학생들의 불만이 쉽게 사라지기 힘든 실정이다.
교사들은 앞뒤 어려움에 빠져 있다. 우선 아직도 컴퓨터 공포증을 가진 교사가 적잖은 데다, 어지간한 솜씨를 가진 교사라도 더 나은 학생이 꼭 있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여기에 시설 관리의 문제가 더해진다. 컴퓨터실은 방과 후나 휴식시간에 개방하기에는 관리가 까다롭다. 일주일에 한두번 수업 때나 만져볼 수 있을 뿐인 학생들로서는 '전시용'이라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게임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서버, 종합정보관리시스템 등을 관리하는 문제에 이르면 대부분 고개를 내젓는다. 초등학교의 경우 전산 계통을 전공한 교사가 거의 없어 "정보부장 할 사람이 없다"거나 "어느 학교든 정보부장이 가장 젊다"는 말이 학교마다 나온다.
정보화를 수업에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교사들은 "아직 멀었다"고 입을 모았다. 미흡하기 짝이 없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쓸만한 학습자료를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교사들은 시교육청과 교육부가 교사들에게 모든 일을 떠맡기려는 기존 발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에 대한 연수는 실제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국한하고 나머지 전산 관련 업무는 컴퓨터 전공 교사나 관리 전담 직원을 별도 채용해 수업 외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 아울러 외국의 경우처럼 뛰어난 학생이 있으면 학생이 수업을 주도하게 하고, 개인적으로 연수를 통해 일정 수준에 이른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정부는 얼마전 정보윤리를 교과에 채택해 학생들에게 사이버 윤리, 인터넷 중독의 폐해 등에 대해 가르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이 역시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교사와 학교의 형식적인 정보화 틀을 깨고 학생들과의 눈높이 차이를 좁혀 주지 않으면 게임방으로,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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