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왜곡 역사교과서 '수정 거부'

입력 2001-07-09 12:01:00

일본 정부가 9일 교과서 역사 왜곡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재수정 요구를 사실상 전면 거부함에 따라 한·일 관계 급랭은 물론 교과서 수정을 둘러싼 한·중·일간 후유증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은 수정요구 거부 이유에 대해 "명백한 오류가 아니다"고 밝혀 양국간 역사논쟁이 첨예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 정부 입장=일본 문부과학성은 9일 한국 정부가 2002년판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 8종의 기술 가운데 35개 항목의 재수정을 요구한데 대해 두개 항목 이외에는 "명백한 오류가 아니다"는 등의 이유를 수정을 거부했다.

문부과학성이 한국의 재수정 요구를 받아들인 항목은 오사카(大阪) 서적의 고대 한일 관계 연표에 나와 있는 부정확한 시기 구분 부분과,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의 '임나일본부설'을 둘러싼 '야마토(大和) 조정의 군세(軍勢)' 관련 기술 등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정한론(征韓論), 동학 농민 운동, 황민화(皇民化) 정책 관련 기술, 위안부 문제 등 한국측이 재수정 또는 사실 기재를 요구한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는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없다", "(일본 교과서 검정 제도상) 정정을 요구할 수 없다", "이미 교과서 검정 의견에 따라 수정이 이루어졌다", "제도상 기술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는 설명으로 재수정 요구를 교묘히 피해갔다.

◇일본 지식인들의 우려=일본 지식인과 학자들은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측이 만든 교과서가 학교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내부적으로 경고음을 내고 있다. 일본의 식자층은 문제의 교과서가 학교현장에서 사용될 경우, 교실내 민족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의 교과서가 일본 학생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명분 아래 '일본인은 우수하고, 한국인과 중국인은 열등하다'는 사고를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운노 후쿠주(海野福壽) 전 메이지(明治)대 교수는 "문제의 교과서가 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면 재일 한국인과 중국인 학생들이 같은 반 일본학생들로 부터 민족차별을 받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대부분 일본 역사를 중학교 과정에서 배우고 대학 등에서 일본사 보다는 세계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아지기 때문에 중학교에서 침략을 정당화한역사교과서를 통해 일본사를 배울 경우 평생 왜곡된 역사관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많은 우려를 사고 있다.

◇향후 전망= 일본 정부가 두달간에 걸친 검토작업 끝에 '수정불가'라는 입장을 공식화함으로 역사교과서가 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날이 멀지 않게 됐다. 일본내 절차를 감안하면 앞으로 왜곡시정을 위해 남은 기간은 한달에 불과하다.

내달 15일까지 각 학교가 8종 중 1종의 교과서를 선정하는 것으로 일본 역사교과서 채택과정이 사실상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재수정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내년도에 교재로 사용하기 전까지 출판사측이 기술상의 문제점을자체 정정할 수 있다.

우익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후소샤(扶桑社) 측도 지난 2일 자율정정을 신청하면서 "앞으로도 필요가 있을 경우 정정신청이 있을 수도 있다"고 가능성은 열어뒀다. 그러나 추가수정이 있더라도, 지금까지의 태도로 볼때 '생색용'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외신종합=류승완 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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