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집에서 13㎞ 떨어진 군위 고로초교에 입학했던 은지(8)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년 늦깎이였지만 15일만에 또 이별해야 했다. 집을 나서 6㎞ 비포장 내리막 산길을 걸어야 군내버스를 만날 수 있고, 거기서 7㎞나 더 가야 학교가 있으니 통학이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
입학 후 처음 며칠간은 같은 학교 부설유치원에 입학한 옆집 혜진.혜민이(6) 엄마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농번기로 일손이 바빠지자 그 차도 운행이 중단됐다. 그래서 초교 2년생 나이인 산촌마을 이은지양은 지금 엄마 선생님과 외롭게 공부하는 중이다.
은지의 아버지는 해발 700m의 산꼭대기 마을인 군위 고로면 화북4리 화산세일교회 전도사. 1996년 충남 부여에서 이곳으로 부임했으나, 요즘은 자나깨나 은지 걱정이다. 이 동네는 1950년대 후반 화전민 107가구가 정착해 80㏊의 비탈산을 일궈 고랭지 배추와 약초를 키우는 곳. 지금은 33가구 70여명이 산다.
전에는 마을 안에 전교생 10여명 크기의 분교장이 있었지만, 학생이 3명으로 줄자 1996년에 폐교돼 버렸다. 이제 분교장 운동장은 잡초만 무성한 채 찌그러진 교단, 주인 잃은 철봉.미끄럼틀, 구석에 수북이 쌓인 농기구.농자재로 을씨년스러울 뿐이다.
폐교 후 교육 당국은 통학 버스마저 운행치 않고 있다. 주민들이 수없이 건의했지만 늘 돌아오는 핑계는 "길이 험하고 문제도 있어서…"라는 것. 기자가 물었을 때 군교육청 오창홍(54) 관리과장은 "1명을 위해 통학차를 사기는 힘들다"며, "내년에 학생이 3명으로 늘면 차를 사든 하숙비를 주든 조치하겠다"고 했다.
은지의 아버지 이중렬(35)씨는 가슴이 새카맣게 탄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5세만 되면 유치원에 보내는데, 이미 2학년이나 돼 있어야 할 은지는 초등학교조차 못보내니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내 자식 하나 때문에 차를 온통 한 대 내 놓으라고 억지부리기도 힘든 일 아니냐고도 했다.
이렇게 양심 고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위교육청은 최근 이 분교장을 매각하겠다고 나서서 주민들을 더 화나게 하고 있다. 최재원(56) 이장은 "이 학교는 동네 사람들이 곡괭이.리어카.등짐으로 만든 것"이라며,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오면 언젠가는 다시 문을 열어야 할 것 아니냐, 그때까지 우리가 관리하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폐교 문제가 이 하나로 총집약된 듯했다.
군위.정창구기자 j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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