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군무원 퇴임 류병곤씨 남구청 직원에 봉사

입력 2001-07-04 14:39:00

"자, 따라해보세요. Please call a taxi for me"."Please call a taxi for me".

"'a'는 실제 회화에서는 뚜렷이 발음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듬감 있게 말해보세요".

28일 오후 6시30분 대구시 남구청 위생과. 난데없는 영어회화 소리가 빈 사무실을 울리고 있는 가운데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류병곤(64.대구 남구 이천동.대구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 통역봉사단장)씨가 하루업무를 마친 공무원들을 상대로 영어교육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

"다가오는 월드컵.유니버시아드대회에 많은 외국인이 올텐데 공무원들이 통역 자원봉사자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남구는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다른 지역보다 외국인들을 안내해야 할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미 공군 K2부대 등 미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28년간 근무하다 지난 86년 퇴임한 류씨가 영어회화 강의에 나서게 된 것은 대륙간컵 축구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던 것이 계기. 아까운 영어실력을 왜 썩이고 있느냐는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할 일을 찾고 있던 중 대륙간컵 대회에서 알게 된 남구청 이광우(50)위생과장에게 무료 강의를 제안하게 됐다는 것.

이 과장을 포함해 위생과 공무원 5명으로 구성된 '제자'들도 열심이다. 지난달 19일 시작, 일주일에 세번씩 있는 강의에 아직 한명도 빠지지않은 것은 물론 여름휴가도 강의가 없는 날에 가기로 했을 정도.

이 과장은 "발음뿐 아니라 미국문화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벙어리가 말문이 트이는 기분"이라며 "근무시간 중에도 가끔 직원들에게 영어로 농담을 던지니까 사무실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다"고 자랑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강의해 지역사회에 진 빚을 갚고 싶다"는 류씨는 30년이 다돼 손잡이를 청테이프로 칭칭 감은 낡은 책가방을 들고 일어서면서도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잊지않았다.

"영어를 잘 하려면 틀려도 좋다는 배짱으로 말을 많이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일단 부딪혀보세요. See you tomorrow".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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