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세상읽기-진실 기피 증후군

입력 2001-07-03 00:00:00

한때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촬영, 고발하여 보상금을 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걸 비시민적인 행위인양 일부에서 함정 적발이다, 돈을 노린 비열한 수법이다는 등등 이유를 들어 맹렬히 비난한 적이 있었다. 위반하지 않으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무법 난폭 차량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는 판국에 반성은커녕 도리어 적발 제도를 문제 삼아 초법 탈법적인 행위 그 자체를 아예 합리화시키려 들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고발정신에 의한 교통질서 바로잡기 운동이 못마땅해 그 반대 논리를 개발한 측은 위반에 익숙한 잘난 사람들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눈치껏 요령을 피워 남보다 더 빨리 효과적으로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고도의 능숙한 기능의 혜택인지라 그 특권을 포기하기 싫을 수도 있다. 내 차 내 기술로 잘 몰고 다니는데 왜 간섭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어쩌다 단속에 걸린대도 혹 부정과 결탁하거나 막강한 권력을 배경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도 있는데, 시민의 카메라에 포착되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게 그들로서는 치욕일 수도 있다. 이럴 때 보통사람들-질서를 꼬박꼬박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할까.

딱히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오늘의 우리 언론 세무사찰 사태를 보며 스친 생각이다. 문제의 초점은 탈세와 부당 거래 등등 현행 법규를 위반했느냐 아니냐는 것인데, 조사방법이나 그 목적과 저의를 쟁점 삼는 것은 성당에서 나무아미타불 찾는 격은 아닐까. 국세청 발표만인지라 아직은 해당 언론사의 이의 신청과 법적 절차를 거쳐 그 진실 여부가 가려지기를 기다려야 할테지만, 보통사람들이 정작 따지고 들어야 할 대목은 왜 이런 탈법이 가능했던가를 추궁하여 다시는 이런 특권영역이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드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일 터이다. 냉혹하게 말한다면 그간 국세청은 직무유기를 한 셈이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관청이나 집권층 역시 소임을 다 했다고는 볼 수 없을 터인데, 그게 권언유착이라는 것쯤은 다 아는 이야기라서 긴 말 하면 잔소리다.

세금 추징이 언론 탄압이라는 목소리도 있으나 그럼 또박또박 세금 바친 보통사람들은 아예 숙맥이고 탈세하는 기업이나 사람만 자유와 권리를 누린 걸까. 아니면 언론사만은 일체의 법률적 구속을 받지 아니한다는 특별법이라도 제정하여 부과된 추징금도 무효화시키는 게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길일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 사회는 진실 기피 증후군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어느 게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누가, 어느 세력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찬반 의사를 결정, 합리화 시키고자 억지논리를 펴나가는데, 이것이 체질화되어 이제는 아예 자신이 생각하는 건 진실이고 상대는 허위이자 악이라고 착각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허위도 반복하면 진리가 된다는 언론매체의 그레샴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 셈이다.

이번 사태로 분명해진 건 언론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그 반대 논리나 억지를 강변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여러 회사가 문을 닫았을 때조차도 묵시적인 지지를 했던 자칭 '언론 자유'시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가히 '언론 방종'이래도 지나치지 않을 지경인데도 '언론탄압'이라는 걸 보면 '악마' 나폴레옹이 정확히 12일만에 '황제'로 표변시킬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건 비단 2백년 전 파리의 '모니틀' 신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언론도 기업이기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보통사람들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가정법은 후기 산업사회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진리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오히려 바람직한 언론활동을 위한 일대 전환점으로 삼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가 현행법대로 언론의 특혜를 거둬들였으니 언론도 이제는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비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자못 독자들은 박력 넘치는 자유언론의 맹활약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길만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진실 기피 증후군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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