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건보재정, 대책 없나?

입력 2001-06-30 12:01:00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목표로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로 역할을 분담하는 의약분업 제도가 시행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는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사상 초유의 의사 파업을 불렀고 의료보험재정은 완전히 거덜 났다.

그렇다고 의약분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많은 약사들이 의약분업을 대비해 엄청난 돈을 투자했고, 병.의원들도 조제실과 약사를 줄이는 등 나름대로 의약분업에 적응해 왔다. 국민들도 의약분업의 근본 정신에는 공감하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 1년을 맞아 의약분업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그 보완책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 예견된 재정파탄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고 빚을 내기에 이르렀다. 의보재정은 지난 96년 처음으로 당기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 매년 적자가 누적되다 지난해 의보통합 및 의약분업 실시와 함께 급격히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의보재정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보험료 수입과 급여지출의 균형이 깨져 적자가 누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지난 94년 연간 180일이던요양급여 기간을 매년 30일씩 늘려 지금은 연중 365일 급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96년엔 CT촬영과 3자녀이상 분만을 보험급여에 포함시키는 등 보험급여범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들어올 돈은 생각하지 않고 의보수가나 의보혜택 범위를 선심쓰듯 늘렸다는 얘기다.

의약분업은 보험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약국에서 자기 돈으로 약을 사 먹던 환자가 병의원을 이용하게 되면서 진찰료, 처방료, 조제료가 추가로발생했고, 고가약 처방증가로 약제비가 대폭 증가했다.

의약분업 실시를 전후하여 1년 3개월 사이에 다섯 차례나 인상된 의보수가(그림 참조)도 재정악화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연구위원은 "통상 1%의 수가인상이 보험재정을 0.6% 증가시킨다는 경험에 의하면 단기간에 5차례 인상한 의보수가가 보험재정에 막대한 추가부담을 안겼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가중되는 국민부담

올초 지역의보료는 15%, 직장의보료는 21.4%로 각각 인상됐다. 따라서 지역의보 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지난해 12월분부터 3만1천392원에서 3만6천108원으로 4천716원 올랐다. 그러나 지출요인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보험재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보험료를 인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한 관계자는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병원가는 횟수가 늘어났고, 의보 적용 범위 확대, 급여기간 연장 등에 따른 지출이 해마다 늘어 지금의 보험료 수입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다"며 "국민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의료서비스 개선은 없고 보험료만 인상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며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부터 먼저 내 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대책은?

대부분 전문가들은 보험급여수준과 범위 확대에 상응하는 수준의 의보료 인상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급여를 끊임없이 확대해 오면서도 의보료는 인상하지 않았다.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수조원의 의보재정 적립금을 갈아 먹어면서 의료 선심정책을 남발해 왔다. 그 결과 의료혜택은공짜로 주어지는 것인 양 국민들에게 잘못 인식하게 되게 했다는 것이다.

경산대 김종대 교수(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는 보험조합 구성단위를 같은 생활권이나 기초 지방정부단위로 종전처럼 분할하는 것이 훨씬 더효율적이라 지적했다. 김교수는 "시.군.구 단위로 자치운영체제를 구축하면 보험재정에 대한 가입자의 책임감이 높아지고 불필요하게 병의원을 이용하지 않게 돼 보험재정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문옥륜 교수는 최근 열린 경총 강연에서 "의보재정 파산은 이미 예견됐던 일로 이런 불행한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정책실명제를 도입, 정치권과 행정당국의 정책오류나 정책혼란 및 정책표류를 최소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문교수는 "대선이나 총선때만 되면 정치권에서 반복되는 공약 남발을 막기 위해 장단기 재정추계를 담당한 사람의 실명을 밝히도록 제도화하는 등 정부의 정책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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