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무법자 멧돼지를 잡아 줄 포수를 보내 주세요!"… 청송.영양 등 높은 산이 있는 지역에서나 피해를 입히던 멧돼지가 근래 들면서 심지어 경북 남부지역 마을들의 앞마당에까지 출몰, 농민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복숭아 집단 재배지역인 청도 경우 작년부터 높은 산 인접 마을마다 멧돼지가 수시로 떼지어 나타나기 시작, 복숭아.자두 등 과일밭을 휘젓고 다니며 풋과일들을 싹쓸이 하고 있다. 매전면 예전1, 2리, 이서면 대곡리, 각남면 사리, 풍각면 수월리 등에서 특히 피해가 심해 거의 매일 밤마다 출몰해 수확 직전의 과수원들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매전면 예전1리 안승호(63)씨는 "올해 초부터 떼지어 나타나 밭을 싹쓸이, 남아 나는 밭작물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최근엔 3천여평의 복숭아.자두 밭을 마구 훑어 과수나무들이 부러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는 것. 마을의 20여농가가 비슷한 실정. 그래서 그는 요즘 저녁 식사를 마치면 뒷산에 있는 과수원으로 지키러 나가고 있다.
"멧돼지가 멍청한 줄 오해할지 모르지만 덜 익은 복숭아는 맛만 본 뒤 뱉어 버리면서도 잘 익은 자두는 귀신같이 골라 먹으면서 씨까지 내뱉을 줄 아는 영리한 놈"이라고 안씨는 말했다.
그러나 멧돼지들은 그 외에도 싹이 올라오기 전의 콩밭을 뒤져 씨를 골라 먹어 버리고, 모종해 놓은 고구마 줄기를 보고도 땅 속에 고구마가 있는 줄 알고 마구 헤집어 농사를 망치고 있다. 밤나무 단지에 매일 밤 나타나 큰 피해를 입기도 하고, 심지어 무덤에 있는 물냉이를 캐 먹으려 봉분을 마구 파헤치기도 한다는 것.
또 같은 마을 뒷산 외딴집에 혼자 사는 서기예(68) 할머니는 "해거름 때가 되면 멧돼지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집 주위 밭을 들쑤시고 다닐 뿐 아니라, 요즘에는 먹을 것이 없는지 가끔씩 민가 인근까지 내려 와 지난 주에는 10여마리가 집안 장독대를 맴돌다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농민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고 있지만 효과가 별로 없다고 했다. 같은 마을 이수암(68)씨는 "25만원 주고 카바이트를 이용해 대포 소리를 내는 '폭음기'를 구입해 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더라"고 했다.
참다 못해 군청으로 몰려 가 잡아 달라고 요구도 해봤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답답해 포수(엽사)들에게 부탁해 봐도 총기 사고를 우려해 지원자가 없다고 농민들이 애 태우고 있다. 경찰은 사고 때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야 보관해 둔 총기를 내 주나 보험사들은 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며 가입 시키기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도.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