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아버지의 유산

입력 2001-06-29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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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중엔 선친(先親)의 유품이 두엇 남아 있다. 망건과 회중시계가 그것이다. 갓 아래 쓰는 망건이 권위의 상징이라면, 쇠줄이 길다랗게 달린 시계는 정확성의 징표이다. 이 가난한 유품은 어쩜 당신의 일생을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인지 모른다. 아버지는 이 땅의 여느 아버지들처럼 늘 울타리 같이 엄한 존재였다. 쉰이 넘어 얻은 막내에 대한 애정 표현은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이미 아버지는 회갑을 넘긴 노인이었다. 시골에서 마땅한 경로당이 없었던 시절,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해서 사랑방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린날, 나는 이곳에서 노인네들이 거쳐온 굴곡 많은 생을 다 훔쳐 본 애늙은이였다. 열살도 채 안되어 등 너머로 민화투와 바둑을 익혔으니 말이다. 경제권을 상실한 아버지는 막내가 제 손으로 밥술이나 떠먹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으리라.

중학교 다닐 때 학과 공부보다는 시집과 소설에 빠져 지냈다. 경주역에서 통학열차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열차를 놓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당시 교통편이 나빠 열차를 놓치면 집으로 올 수가 없었다. 친척집에서 자고 다음날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처음에는 나무라기도 했지만, 나중엔 "얘야, 너는 평생 책하고 살겠구나"라고 너그럽게 대해주셨다. 평생 책하고 살겠다니, 어렴풋이 내 갈길을 예견하고 계셨던가 보다. 비록 귀 닳은 놋숟가락 하나 남겨 줄 것이 없는 아버지의 내리사랑은 어느 부모보다 더 곡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른이 다 되도록 문학을 한답시고 떠돌았던 내 모습을 선친은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 보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이승을 뜨시고 나서 나는 겨우 시인의 반열에 올랐으니 말이다.

지금 세태를 '애비없는 세대'라고 한다. 가부장적 권위의 상실은 애비없는 세대를 확대, 재생산해낸다. 우리 사회는 날로 시끄럽다. 이것은 진정한 어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땅의 아버지들의 머리 위에 번듯하게 갓을 씌워라. 그리하여 권위와 말발을 되돌려주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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