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06-27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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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혀짜래기 흉내로 금기 깨는 보리타작 소리

세기적 가뭄이 장마전선과 함께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90년만의 지독한 가뭄 현장에 마지못해 나타난 정치인들이 별 연극을 다한다. 이회창 야당총재가 가뭄 현장에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을 뿐 아니라, 그 동안에 함께 모내기 시늉을 할 농민들을 붙들고 "총재님이 오시니 비가 오는군요" 하는 대사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농민들을 대기시켜 두고 생색내기 보도사진 찍기에 얼굴이나 내미는 일이 낯간지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장마가 지고 홍수가 나면 이 사람들 다시 수해지역에 가서 또 같은 방식의 사진찍기 연출을 할 것이 뻔하다. 논바닥에서 일손 바쁜 농민들 붙잡아 두고 거짓 연출하지 말고 각자 집무실에서 가뭄대책이나 제대로 세우는 일이 더 긴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직무유기이기 전에 직무폐기이다. 이들에 비하면 도리깨꾼들은 직무덤터기를 안고 일하는 셈이다. 도리깨질만 할 것이 아니라 보리타작소리까지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리를 에화/ 잘하면 에화

개장/ 국에다/ 흰밥을/ 주고요

소리도/ 몬하는/ 사람은/

오뉵월/ 염천에/ 초학을/

줄 것이다/에화 ….

의령 사는 이태수 어른 소리이다. 앞소리 한 마디마다 '에화' 하고 후렴을 받았다. 타작만 할 것이 아니라 소리도 잘 하면서 보리타작을 하라는 말이다. 일터에서 소리를 잘 하는 것이 곧 일 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소리꾼은 일꾼들보다 품을 더 많이 받는다. 소리가 일의 능률을 올리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목도리깨꾼은 소리도 잘 한다. 그래서 으레 앞소리꾼 노릇을 한다. 소리를 잘하면 개장국에다 이밥이요, 소리를 못하면 오뉴월 무더위에 학질이나 앓으란다. 일꾼들 모두 신명나게 일하도록 함께 소리를 하며 서로 부추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때리라 에화/ 불쌍도 에화

하구나/ 우리야/ 농군아/ 오뉵월/

삼복에/ 시절에/ 단도ㄺ / 같이도/

덥운/ 날씨에/ 우리야/ 농부는/

직업이/ 요기다/에화….

오뉴월 염천에 보리타작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무논에 발을 담그고 무른 논바닥에 모를 심는 모내기와 다르다. 보리타작은 온 몸에 힘을 실어서 힘껏 도리깨질을 해야 할 뿐 아니라 햇볕이 작열하는 타작마당에서 해야 한다. 그냥 있어도 무더운 판에 도리깨질을 하느라 온몸이 땀 범벅이 되는 것은 물론, 보리 까끄라기가 몸에 붙어서 따갑기조차 하다. 타작마당에 들어서면 마치 삼복 더위에 뜨겁게 단 돌을 안고 있는 듯하다. 농부 직업이 새삼 불쌍하게 인식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농부의 책임이 막중하다.

앞집에 지수씨/ 내 손만 바래고

뒷집에 지수씨도/ 내 손만 바래고

좋다 여기도 보리고/ 저기도 보리다

모내기와 달리 보리타작은 남정네들끼리 주로 한다. 여성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격렬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도리깨/ 뿌솨져도/ 원망은/ 안한다/ 때리라/ 마당이/ 둘러야/ 꺼져도/ 어떤/ 누구가/ 원망을/ 안한다/ 때리라' 도리깨가 부서지고 마당이 둘러 꺼지도록 힘껏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성들만 있는 집의 보리타작은 남정네가 맡아서 해야 한다. 동생이 군에 가고 없으면 형이 아우네 보리타작까지 다 해야 할 판이니, 제수씨도 내 일손만 바랜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째쭈찌요 찝쭈쪼/ 물러가며 찝쭈쪼

알라 쩟 쭈고 찝쭈쪼/ 보재에 비 묻었다

잘도 한다 호헤야/ 물러서서 찝쭈쪼

경주 이선재 할머니의 소리다. 이웃마을에 혀짜래기 일꾼이 있었는데, 앞소리를 이렇게 불렀다고 흉내를 내면서 부른 것이다. '제수씨요 짚 추소(짚을 추려내 주소)' 하는 말을 혀짜래기 소리로 하면서 '제수씨요 씹 주소'라고 들리도록 한다. '아기 젖부터 주고 씹 주소!' 라고도 한다. '보재에 비 묻었다'고 하는 소리도 사실상 '보지에 피 묻었다'고 하는 소리로 들리도록 노래한다. 노래의 '보재'는 예전에 봉화불을 올리던 재를 말한다. 멀리 봉화재에 비가 묻어오면 서둘러 보리타작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런데 봉화재는 어느 새 '보호재', 또는 '보-재'로 축약되어 노래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소리의 내용은 보릿짚을 추어내면서 보리타작을 거드는 제수씨에게 일을 독려하는 상황이지만, 마치 이브 엔슬러 원작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는 것 같다. 이 연극에서 진행자로 나오는 김지숙은 첫 대사에서부터 관객에게 '왜 보~지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따지고 든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신체의 일부를 에둘러 거시기·냄비·조개 등으로 일컫는데 대한 공격으로서 여성기를 여러 차례 까놓고 말한다.

때리라 따ㄲ아라/ 뚜디라 따ㄲ아라

살짝살짝 들어라/ 다리로 들어라

뒷집에 형수도 내 손만 바래고

앗다 그 보지 굵다

진양군 사는 박판조 어른 소리다. 보리타작을 하느라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도리깨질하는 상황을 마치 성행위 하는 상황처럼 노래하고 있다. 내 '손'만 바래는 뒷집 형수의 기대도 수상쩍다. 마침내 '앗다 그 보리 굵다'고 해야 할 것을 혀짜래기 핑계를 대면서 노골적인 소리를 하고도 음란물 검열을 늠름하게 넘어간다. 혀짜래기라서 그렇게 말했다는 데 어쩔 것인가.

뒷집에 형수도/ 내 좆만 바래고

앞집에 제수도/ 내 좆만 바래고

여어도 낱보지/ 저어도 낱보지

의령 사는 허영순 아주머니 소리인데 더 노골적이다. 남녀 성기를 일컫는 말이 아무런 모자이크도 없이 깨끗한 그림 그대로 거듭 제시된다. 보리이삭 무리에서 벗어나 낱개로 떨어져 있는 이삭을 '낱보리'라 하는데, 혀짜래기는 이를 '낱보지'라 한다. 타작마당인지라 여기도 낱보리 저기도 낱보리가 있게 마련인데, 형수와 제수와 더불어 타작하는 마당에서 '여기도 낱보지 저기도 낱보지'를 일컫는 것은 아무래도 엉뚱하다.

형수나 제수가 모두 자기 일손만 바래고 있다는 한심한 처지를 노래한 것인데, 혀짜래기 소리로 하는 바람에 그게 결코 한심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패륜적인 도발이나 선정적인 외설로 들리는 것도 아니다. 성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편견을 뒤집어엎는 통쾌한 해학이 있을 뿐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짐짓 혀짜래기 흉내를 빌려서 검열을 통과하고 자기 본색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새삼스레 '개혁적 보수'를 자처한 이회창도 일종의 혀짜래기소리꾼이다. 과거 3김씨들이 중도보수, 중도개혁, 진보적 보수, 보수적 개혁 등 잡다한 구호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 이 총재도 '개혁적 보수'라는 말로 자기 정체성을 표방하고 있다. 보수라는 말이 자기 본색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싶어 개혁이라는 말을 꾸밈말로 가져온 셈이다. 그러고 보면 국가혁신위원회라는 말도 일종의 혀짜래기 소리다. 농민들을 모아 놓고 '총재님···'구호를 외치게 한 제왕적 작태만 보더라도 자기 혁신이 앞서야 하고, 재벌옹호와 개혁법안 반대, 경직된 대북관 등 수구 논리를 보면 야당의 당내혁신이 더 시급하다. 혀짜래기 소리로 짐짓 하는 '국가혁신'보다 자기 혁신과 정당개혁이 더 절박한 때가 아닌가. 그것은 마치 이미 겪은 가뭄에 뒷북치기보다 미구에 닥칠 장마대책 마련이 더 절박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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