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동사무소 공무원 김태동씨

입력 2001-06-25 14:19:00

대구시 수성구 파동은 묘하게 생긴 동네다. 상동, 두산동과 경계를 이루는 용두교에서 달성군 가창면의 경계가 되는 파동교까지, 3㎞에 이르는 가늘고 길쭉한 모양이다. 게다가 산과 사찰, 교회, 복지시설이 많다. 작은 동네에 사찰 13개, 교회 9개, 애망원, 애활원 등 큼직한 복지시설만도 4개나 된다.

김태동(39)씨, 어수룩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천연덕스러운 데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파동내 사찰과 교회의 각종 행사를 훤히 꿰고 있다. 행사가 끝날 무렵이면 그 옛날의 각설이처럼 어김없이 나타나 제사 음식, 기도 음식, 초파일, 크리스마스 음식을 싹 쓸어 담는다. 그렇게 챙긴 음식을 파동에 사는 가난한 이웃 2천여명에게 차례로 나누어준다.

잔치나 기도음식은 대체로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게다가 한겨울에도 심심치 않게 여름 과일이 젯상에 오른다. 그 덕분에 기름기 없고 거친 음식에 익숙한 이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은 때때로 특별한 맛을 경험한다.

"관내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는 378명인데 실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2천여명이 넘어요. 법의 맹점 때문에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없죠" 김씨는 파동 동사무소 말단 사회복지 공무원이다. 그의 싹쓸이는 이른바 법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한 '말단 공무원의 재량권'인 셈이다.

김태동씨는 2000년 1월 파동으로 발령 받은 후 유난히 많은 사찰과 교회 그리고 복지시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많은 사찰과 교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일부러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넨 덕분일까, 이제 파동의 사찰과 교회에서는 행사를 마치면 음식을 챙겨두고 김씨를 기다릴 정도가 됐다.

김씨는 또 인맥 관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알고 지내는 한방병원엔 틈나면 안부전화를 낸다. 관내 불우이웃들이 무료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미리미리 '아부'를 해 두는 셈.

김씨는 11년째인 사회복지 공무원직이 세상 어떤 직업보다 마음에 든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자신이 '비빌 언덕'이 된다는 사실은 여타의 웬만한 성취감과 바꾸기 힘든 행복이다. 그러나 남모르는 안타까움도 많다. 현장을 다니며 이웃을 살펴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민원상담, 행정처리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요일도 반 이상 나와서 근무하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법을 잘 몰라서 혜택을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아요. 이런 사람은 제가 직접 챙겨야 하는데 능력이 모자라서…" 김씨가 현장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사랑의 징검다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 동네 불우이웃을 우리가 챙기자'고 시작한 운동. 동네 안에서 후원자와 이웃을 자매결연시키고 동사무소가 나서서 후원품을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김씨의 '사랑의 징검다리'는 불우이웃에게 '동사무소에 나와 쌀 한 포대 받아 가시오' 라는 식이 아니다. 대신 집으로 찾아가 '쌀 배달 왔어요' 하고 쌀 포대를 내려놓을 뿐이다. 쌀 한 포대로 사람을 기죽이면 복지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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