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3월 17일, 런던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겨우 11명의 조객이 참석했다. 그러나 100년도 되지 않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그의 주의를 신조로 내세우는 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다. 별 볼일 없는 빈한한 남자가 이렇게 엄청난 세계사적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그의 이름과 업적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장례식에서 읽은 추도사처럼.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1818-1883). 불꽃처럼 강렬한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괴팍하고 모순적이며 약점이 많았던 인간 마르크스를 그려낸 전기 '마르크스 평전'(푸른숲 펴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영국 '가디언'지 칼럼니스트인 프랜시스 윈이 쓴 이 평전은 마르크스 사상보다는 마르크스라는 한 인물에 초점을 둔 익살 넘치는 평전이다.
프로이센 출신의 망명자였지만 영국의 중간계급 신사로 살았고, 사나운 선동가였지만 삶의 많은 시간을 영국박물관 열람실에서 학자처럼 정적에 싸여 살았으며, 사교와 연회를 좋아했지만 거의 모든 친구들과 불화를 일으켰고, 가족에 헌신적이었지만 하녀를 임신시켰으며, 매우 진지한 철학자였지만 술과 담배와 농담을 좋아하는 낙천가였다. 윈이 본 마르크스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 뿐만 아니다. 그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가장, 아내를 배반했던 남편, 부인의 장례조차 외면했던 탕자, 몇 푼의 돈을 얻기 위해 친척과 친구들에게 수없이 구차한 편지를 썼던 궁핍한 신사, 자식 셋을 질병속에 죽어가게 했던 무능력한 가장 등. 오죽했으면 그의 어머니 헨리에테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에 대해 쓰지 말고 자본을 좀 모았으면 좋겠구나…".
이 평전에서 윈은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 마취제 같은 매력과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 등을 다채로운 복잡성과 모순 속에서 포착하고 있다. 유명한 저서 '자본'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마르크스가 처했던 환경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1867년 함부르크에서 출판된 '자본' 1권은 사실 1845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빈곤과 가족 문제, 건강 때문에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없어 22년만에 겨우 빛을 보게 됐다. 엉덩이 종기 때문에 나중에는 일어서서 써야 할 지경이었다. 마르크스가 이 책에 대해 너무도 오랫동안 떠벌여왔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이미 지쳐버린 상태. 마르크스는 책이 나온 다음날 아침 자신의 명성이 전 유럽에 울려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세계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이 책에 대해 그 당시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흔히 20세기 역사는 마르크스의 유산이라고 불린다. 그의 사상은 경제학, 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문학 등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저자 윈은 필요에 따라 신격화되기도 하고, 모든 악의 근원으로 악마처럼 폄하되기도 한 위대한 사상가를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 복원해내고 있다. 수많은 약점을 지닌 허약한 인간의 모습과 시대의 모순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면서 그 모순에 대항해 처절하게 투쟁했던 한 거인의 삶을 함께 읽게 해준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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