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로 오른 정상

입력 2001-06-22 14:49:00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21일 오후 3시쯤 대구 앞산 정상에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희망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산격종합사회복지관 주최로 열린 '장애우 가족 등반대회'에 참가한 지체장애인 21명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앞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 노래 '행복의 나라로'를 합창한 것.

14년전 척추에 물혹이 생겨 대수술을 받고 1년전에야 겨우 손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김평남(57.여)씨.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한 채 하루종일 방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자신이 남편과 아이들의 짐이 된다고 비관, 몇번이나 삶의 끈을 놓을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20년만에 다시 산정상에 오른 이날, 김씨의 그 동안 마음고생은 시원한 바람에 식는 땀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버렸다.

김씨는 "산에 올라 넓은 세상을 바라보니 가슴도 탁 트이고 살아있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빙긋이 웃었다.

평생 소원이던 산에 올랐다는 기쁨에 난간에 기대 억지로 몸을 일으킨 장청일(64)씨도 있는 힘을 다해 '야호'를 외쳤다. 태어날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은 장씨는 3년전 갑자기 찾아온 골다공증까지 겹쳐 20년간 해오던 구두닦이 생활마저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두고 한달 생활보조금 4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시력장애 1급을 받은 노모(87)를 모시기도 벅차다.

장씨는 "어머니 빨래도 해야하고 밥도 지어 드려야 하는데 자꾸만 힘이 없어진다"며 "어머니만 아니라면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흐느꼈다.

하지만 그런 장씨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산 정상에 올라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그 꿈을 이뤘기 때문.

산격 종합사회복지관 김순호씨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휠체어 장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며 "장애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앞으로 매년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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