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에 새의제 제시

입력 2001-06-18 15:03:00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對北) 대화재개 선언에 '경수로 제공 지연 보상 논의'라는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고 나선 것은 일단 대화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무성 대변인은 18일 발표한 담화에서 부시 대통령의 대화재개 선언에 대해 "유의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부시 대통령이 대화 의제로 핵.미사일 문제 및 재래식 무기감축을 제시한 것에 대해 "그 진의에 대해 각성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대변인은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일방적이고 전제조건적이며 의도에 있어서 적대적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거부감을 표시했고, 재래식 무기 감축에 대해서도 "남조선에서 미군이 물러가기 전에는 논의의 대상으로조차 절대로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넘긴 '대화재개 선언'이라는 공을 되받아 넘긴 셈이됐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대화 의제를 수정해 제시하면서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을 요구했지만 이는 폭넓게 볼 때 북.미 기본합의문과 북.미 공동 코뮈니케 이행 문제다.

대변인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그만 두고 우리와 진정으로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현 단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쌍방이 이미 공약한 조.미 기본합의문과 조.미 공동 코뮈니케의 사항들을 합의된 그대로 이행하기 위한 실천적 문제들을 의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4년 10월 강석주 외교부(현 외무성) 제1부부장과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 순회대사가 채택한 북.미 기본합의문은 △북.미간의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와 안전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지난해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때 체결된 북.미 공동 코뮈니케는 양국간의 적대관계 종식 선언과 기본합의문 이행 의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외무성 대변인이 부시 행정부 이전에 합의된 이들 사항의 이행 문제를 강조한 것은 관계개선 작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클린턴 행정부 때까지 진전된 북.미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관계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무성 대변인이 북한 당국과 클린턴 전 행정부 간의 협상에 대해 양측의 이해관계에 맞는 방향으로 대화가 이뤄져 왔다고 평가한 후 "주권국가 사이의 대화가 공정하고 평등한 기초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있는 초보적인 요구"라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외무성 대변인은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나 재래식 무기 감축과 관련한 미국의 주장을 비난할 때 북한 언론들이 자주 써 왔던 '미제'라는 용어를 단 한차례도 사용하지 않고 '미국'으로만 표현, 북.미 관계개선에 대한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외무성 대변인의 이번 담화는 경수로 건설 지연을 부각시킴으로써 북.미 대화 재개시 우위를 선점하자는 의도도 포함돼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미 국무부는 경수로 건설 목표일인 2003년에 대해 "목표일 뿐 계약상 또는 국제법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경수로 제공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보상 불가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있어 양자 간의 신경전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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