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은행장이 한 이야기이다. 그는 업무관계로 해외출장을 가면서 어려운 은행사정을 고려하여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타고 가는데, 같은 비행기에 그 은행에서 워크아웃을 시키고 있는 중견기업의 전문경영자가 해외시찰을 위하여 일등석을 타고 가더라는 것이다. 행장인 자기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데, 도산 직전의 중견기업 최고경영자는 일등석을 타고 가는 것을 보며, 과연 저 기업이 소생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다시 한번 느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서는 근로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 경제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한 기업은 총 부채가 20조원을 초과하는데 반하여 총 자산은 9조원이다. 게다가 일년에 총 매출은 5조원이고, 순이익은 매월 1천억 원 이상 영업 손실을 보고 있다. 따라서 이 기업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로서 대규모 인원 축소를 포함한 비상계획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노조는 인원감축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게릴라식 파업을 통하여 회사의 정상적 생산활동마저 방해하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결국 근로자들의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정부에게 겁을 주고 추가 운영 자금을 계속 조달하여 고용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근로자들의 측면에서 본 도덕적 해이로서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억지를 통하여 직장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도덕적 해이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나 근로자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관료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우리의 공직자들이 퇴직하며 하루아침에 공기업이나 은행장 등으로 임명되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관료들은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세우고 경제운용을 담당한 경험은 있으나, 기업이나 은행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경제관료가 은행장으로 임명되는 모습을 보면 한마디로 이제까지 관치금융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병폐라고 지적된 것과는 아무 관련 없이 관치금융을 계속하는 도덕적 해이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이제까지 정부행정을 맡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은행가로 변신하여 은행의 여수신 결정을 내리고, 어느 기업에 대규모 대출을 하여야 할 지 결정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우리 경제에 만연된 도덕적 해이는 그 동안 거듭된 경제개혁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는 모습이다. 워크아웃되고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기업의 비용으로 안락을 즐기고 있고, 근로자는 공적 자금에 의존해서라도 고용을 유지하려고 하고, 관치금융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정부관료들이 금융기관의 은행장으로 임명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 모두가 도덕적 해이 속에서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원래 도덕적 해이란 용어는 영어의 'Moral Hazard'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든 예들을 중심으로 모럴 해저드란 단어를 번역한다면 한마디로 '엉터리 판'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위에서 든 예들은 시장경제원리에 맞지도 않고 또 합리성이 결여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비합리적인 사례나 모럴 해저드가 우리 경제 속에 많을수록 결국 우리 경제는 엉터리 경제가 되는 것이고, 이런 엉터리없는 일들이 많이 존재할수록 우리 경제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개혁이 한참 진행중이다. 현재 경제개혁을 위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도덕적 해이에 대한 여러 가지 조처가 실행되어야겠다. 우리 경제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경제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의 밑받침인 신뢰를 구축하지 않고 경제운용을 강행하는 셈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된 산업이나 기업이나 인물들은 빠른 시일 내에 도태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겠다.
곽수일 서울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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