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누굴위한 기밀인가

입력 2001-06-16 14:44:00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말이 있다. 불필요한 인정이나 자비를 베풀다가 오히려 심한 타격을 받을때 쓰이는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양공(襄公)이 초나라와 싸울 때 일이다. 송나라 장군이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널때 공격하려고 하자 송양공은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말렸다. 다시 초나라가 진세를 가다듬는 틈을 타서 이를 치려하자 "군자는 남이 어려운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라며 또 막았다. 결국 병력이 열세였던 송나라는 참패했고 양공 자신도 중상을 입은 것이 빌미가 돼 목숨을 잃었다. 송양공이란 어슬픈 지도자의 '적절치 못한' 신사도(神士道) 때문에 송나라의 애꿎은 백성들만 도탄에 빠졌던 것이다.

DJ는 영해를 침범한 북한 상선들에 대한 우리 해군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했다. 아무리 영해를 침범했다지만 비무장 상선에 무력을 쓸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지다. 일리가 없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북한 상선과 우리 해군이 나눈 교신 내용을 보면 참담한 느낌이 앞선다. 우리해군이 영해를 침범한 북한 상선에 대해 "홍도해협은 우리 영해이니 제주남방으로 돌아 가시오"를 23차례나 간구한 장면은 주권국가의 국토방위를 책임진 국군의 모습치고는 너무나 초라하다.

교신 내용은 이밖에도 "…하시길 권고합니다", "협조 바랍니다", "지켜주시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등등 누가 침략자고 누가 주인인지 분간도 안된다. 이 와중에 국군기무사가 우리 해군함정의 교신내용(3급비밀)을 공개한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의 보좌관을 소환조사 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이미 북한도 알고 있는 교신내용이 알려진데 대해 기밀 유출 운운하고 몰아가는 구태의연한 대처방법에 대해 "고작 한다는 일이 이뿐인가…"싶은 허탈한 마음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어느나라든 국가주권(主權)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 그래서 그나라 국군은 영토를 침범당한 즉시 교전규칙에 따라 침략자를 격퇴부터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DJ는 몇차례씩이나 영해를 침범한 북한 상선을 통사정 하다시피 보낸 것은 적절했다고 하니 뭔가 아퀴가 안맞은 느낌이다. 이러다 "눈앞에 적군이 쳐들어오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하는 문의전화가 국방부에 쇄도하는 희한한 꼴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이다. 국가안보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다가 자칫 송양지인의 변을 당할까 우려해서 하는 소리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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