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이현세의 승리

입력 2001-06-15 15:00:00

오늘의 우리 사회는 창의적인 정신이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는 시대를 맞고 있다. 자유로운 창작 정신의 구현이 곧 우리 사회의 잠재적 재화가 되고, 고부가가치 창출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예술작품이 큰 돈이 되는 경우도 그 이면에는 창의적인 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표현 문제를 두고 논란과 갈등이 잇따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때로는 사회에 미칠 악영향 때문에 과도하게 방부제를 뿌려 그 자유를 제한하고, 창의성과 미적 감각마저 훼손시킬 때도 적지 않다.

▲우리는 지금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주장과 의견을 묵살하거나 존립 근거를 흔든다면 독선이나 폭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근년 들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대중문화의 음란성.폭력성에 대한 문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듯이 보인다. 법정의 판단이 이따금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는 예가 적지 않다.

▲집단성폭행 등의 장면을 묘사해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은 이현세씨의 청소년 만화 '천국의 신화'가 항소심에서 '전체 중 한 장면만으로 음란성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1심에서와는 다소 다르게 획일적인 잣대로 예술작품의 음란성과 잔인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만화라는 특수 장르와 비교적 나이가 든 청소년이라는 구독 대상층을 고려한 새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오랜 시비 끝에 뒤늦게나마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로서는 가뭄 뒤의 '단비'가 아닐 수 없다. 법적인 판단 이전에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식들에게 보여 줘도 괜찮은 것인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판결을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 경우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법정의 자의적이며 형평성을 잃은 판단이라는 비판의 소지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건 뻔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문화.예술적 표현의 소재들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고, 고소와 고발이 잇따라야만 할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예술작품을 두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논란은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하리라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