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피해 왜 되풀이되나 (4)항구적 대책

입력 2001-06-15 14:00:00

"수천년래 한발에 무대책인 농토 위에 살며, 천후에만 의존해 온 서글프고 부끄러운 과거를 이제 다시 장래에 연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무위와 빈곤의 유산을 또 다시 물려줘 후손들로부터 무능한 조상이라 불려서는 안됩니다…" 1967~68년 심한 가뭄이 휩쓸고 간 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이같은 비장한 심정을 담아 1968년 11월15일 '농업용수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30여년. 많은 돈이 투입됐고 시설들도 나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가뭄과 홍수에 휘둘리고 있다. 사막 같은 이스라엘은 아무 일 없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분야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이유를 간단히 정리했다. 박 대통령 사후 20여년 동안 치수방재 사업이 소홀해졌기 때문이라는 것.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별다른 사업은 못했지만 두 번이나 전국 수리시설을 조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수리시설 실태조사조차 한번 제대로 이뤄진 적 없다고 했다. 정확한 것이야 더 확인돼야 할 것이지만, 적어도 현장 책임자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음에는 틀림 없었다.

농업기반공사 신종일 영덕군지부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치수 정책은 항상 뒷전으로 밀렸고, 심지어 시작됐던 공사가 중단될 때도 있었다"고 했다. 경북도청 김길원 건설국장은 "1970~80년대 들어 갑자기 교통수요가 폭발하다보니 도로 확장·포장 사업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다. 도시 위주로 생활권이 형성된 것도 치수보다 도로 수요가 더 커진 원인"이라고 했다.

도로 건설과 관련해 올해 경북에 투입되는 돈은 중앙정부 부담을 포함해 1조8천800여억원. 반면 치수방재 사업비는 2천884억원이다. 영천시 경우 1995년 이후 도로 건설(344건)에 1천287억여원을 들인 한편, 치수방재 사업비는 947개 저수지 준설비 4억7천만원이 고작이었다. 대구·경북지역 국도·하천 관리를 맡은 부산지방 국토관리청 예산 편중도 마찬가지. 연간 규모 1조6천억여원 중 하천 부문은 11%가 조금 넘는 1천800억원에 그치고, 그나마 제방 건설·관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4차로 고속도로 1km 건설비는 평균 189억원. 왜관~구미(19km) 8차로 확장에는 무려 6천80억원(km당 320억원)이 투입되고 있다. 반면 4천637km에 달하는 경북도내 하천의 1%(46km)를 다 개수한다 해도 400억원(km당 8억7천만원) 밖에 안든다. 그런데도 도내 하천 개수율은 아직도 65.3%에 머물고 있다. 도로는 없어 봐야 불편할 따름이지만, 하천 부실은 바로 재앙을 부른다.

시민의 안전과 재산 문제에 직결된 치수는 소홀히 되고 도로가 위주로 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그것은 바로 정치성. 정권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지사·시장·군수들로서는 금방 생색나는 도로 만들기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치수는 인기 관리에 잘 해야 본전도 되기 힘들다는 것.

"… 도로는 내가 예산을 따 내 건설했다" "내가 당선되면 …에 도로나 다리를 놓겠다"는 선거 공약이 횡행하는 것에서도 그런 사정을 읽을 수 있다. 한 군청 공무원은 "주민 편의를 고려한 것이 없지는 않지만, 또다른 목적 때문에 군의원들의 요구 대부분도 자기 선거구 도로 개설에 몰려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가뭄을 통해 시민들은 정말 자신들을 위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 박재효(55)씨는 "성주댐 덕분에 군 전역이 가뭄 모르고 지낸다"며, "요즘같은 가뭄에도 산골짜기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만족해 했다. 성주댐은 겨우 427억원을 들여 만든 것. 말이 댐이지 저수지(2천만t 이하) 수준을 겨우 벗어난 3천824만t 규모에 불과하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성주군내 9개 읍·면 농지 3천530ha의 농부들이 지금 행복감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의성군청 김경진 농지담당은 "앞으로는 수해나 한해가 발생하면 근본 원인부터 분석해 복구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치수(治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수(利水)를 강조했다. 도청 김길원 국장은 "1997~98년 수해 이후 치수 방재가 땜질식 원상 복구보다는 개량복구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1998년 상주에 큰 수해가 났을 때 이같이 방향을 선회해 무려 2천200억원이나 들였다는 것.

더욱이 이제는 도로 건설 사업이 어느 정도 수요를 충족시켰고 일면 과잉 공급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만큼, 국가 안위에 직결되는 치수·이수 사업으로 다시 중심을 넘겨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영남대 토목공학과 이순탁 교수(중앙 하천관리위원)은 "가장 효과적인 다목적댐 건설이 주민 반발에 부닥치자 1980년대 이후에 거의 지지부진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도청 김 국장도 21세기 건설의 중점은 치수방재에 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북대 토목공학과 한건연 교수는 "국민총생산 대비 수자원관리 투자비율은 0.07%로 도로건설 투자(1.4%)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며 "물수요관리의 효율성을 재고하고 댐연계운영이나 기존 댐의 기능보강 등을 통한 이수정책을 적극 추진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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