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교수, 왜 죽음 택했나

입력 2001-06-14 12:31:00

"불같은 열정으로 시민·사회운동에 매진하던 분이 왜 그같은 짓을..."

계명대 법학부 신현직 교수가 13일 새벽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자신의 개인 연구실인 한 빌라에서 투신해 숨졌다는 비보를 접한 동료교수, 시민단체등 주변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한창 일할 40대 후반의 신교수가 죽음을 택한 배경에 대해 주변 인사들은 사회변혁을 꿈꾸어온 이상과 그에 못미치는 현실의 괴리를 가장 큰 요인으로꼽았다.

장병옥(54) 계명대 교수는 "신교수가 대학과 사회민주화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많이 힘들어했다"며 "특히 계명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학교를 그만둔 동료들과 달리 홀로 학교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자주 '죽고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교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좀더 맞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너무도 안타깝다"고 비통해했다.

장주효(59) 새대구경북시민회의 대표는 "워낙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다보니 여기서 오는 경제적 부담과 책임감 등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며 "고민을혼자서 삭이려는 성격탓에 심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명대 학생들은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교수 중의 한 분"이라며 "존경하던 교수님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말했다.

신교수는 지난해 4.13총선 당시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하는 등 갖가지 시민단체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이호준기자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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