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시인들의 蒙利면적

입력 2001-06-14 00:00:00

세상도, 우리의 삶도 어수선하고 삭막하다. 팍팍하고 가파르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더 나은 세상이 더디게라도 오기는 오고 있는 건지…. 여전히 앞이 잘 보이지 않고, 기댈 언덕마저 자꾸만 물러서는 느낌이다.

세상도 삶도 삭막하고 가팔라

이런 시대에 시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면서 살아 가고 있을까. '잠수함의 토끼'처럼 첨예한 감수성으로 어떤 조짐들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실낱 같은 희망의 메시지라도 붙들고 있는 건지…. 최근에 나온 이 지역 시인들의 시집들을 일별하면서 그 현주소를 주마간산격으로나마 들여다보기로 하자.

이승주 시인은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를 부표에 갇히고 상실 위에 놓인 시간의 정거장이라고 규정한다. '곳곳에 덫을 놓는 어둠'('부표') 속이고, '유혹의 꽃으로 교묘하게 자신을 위장하고/먹이를 기다'리면서 '불빛 몇 개로 부표를 띄우'(같은 시)는가 하면, 인간들이 그 부표에 갇히는 혼돈의 도가니라고 절규한다.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의 하재영 시인은 오늘의 도회를 '부레를 부풀리며 고층으로 고층으로/북소리 둥둥'('부레옥잠') 띄우고 있는 부레옥잠으로 파악한다. '살인.절도.횡령의 기사'('객사 연습')가 잇따르는 삭막한 곳이라고 절망하기도 한다.

강해림 시인도 "구름 사원"을 통해 현실의 어둠을 '익명의 섬이 되어 떠돌기 위해 부풀어오르는, 저 먼지의 눈'('먼지들')이라는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쓰레기 봉투 속에서'에 이르러선 '모든 의심과 오류와/헛된 망상의 냄새와 더불어 즐겁게 썩어가기를,/그리하여 세상의 온갖 이름없는/불화와도 만나 화해하기를' 소망한다. 시 '시의 밥줄'에서는 '나 오늘/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배부르고 싶어'라는 고백도 낳는다.

희망 대신 습관의 힘으로 살기

이 시대의 시인들은 사실 '밥줄'이 돼 주지도 못하는 시를 쓰고 있다. "사랑의 빚"에서 정지강 시인은 '시인이 불행한 이유'라는 시를 통해 쓸데없는 궁상을 떨고 필요 없는 걱정을 하며 사랑을 낭비한다고 자성하면서도 '불행한 시간들을 죽여갈 수 있는/밑이 째지는 아픔으로 엉클어내지 않는가'라는 반문에 이른다.

"행복한 감옥"이라는 시집의 표제가 시사하고 있듯이 김영근 시인은 '갇힌 존재'로 희망을 버린 대신 습관의 힘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자조한다. '더 이상 희망은 아니지만/버릴 수 없으므로 습관처럼 숟가락을 쥐어주고/밥을 먹인다'('표제 시)는 것이다. 하지만 어지러울 뿐 두렵지는 않다는 당당함을 잃지는 않고 있다.

우리는 진정 지금 절망과 좌절감에만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 "노을은 그리움으로 핀다"의 김기연 시인은 '돌개바람'에서 드러내듯 원초적인 생명력을 끌어안는다. 관능과 감각적인 충동의 힘으로 삶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느티나무 숲"에서 김용주 시인은 '손에 잡히지 않는 빛으로/목숨을 빚어내는 나무들에/등을 대고 기대서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말씀이 가만 가만 들'(표제 시 1)리는 '생명에의 외경심'이 우리의 몫임을 일깨워 준다.

우리의 희망은 언제 환해질까

그런가 하면, 송재학 시인은 "현실의 황무지 뿐 아니라 상상의 황무지조차 그 몽리면적을 넓히기란 쉽지 않다"고 '기억들'의 자서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 시인에게는 그 '상상의 황무지'가 여간 소중한 게 아니다. 그가 '혼자 있기 위해 필요한 몽리면적을 생각한다면/내가 가진 사막은 자꾸 넓어져야 한다'('황무지에로의 접근')는 말은 그러므로 예사롭지가 않다. 더구나 정신의 배후인 의심, 특히 '먼지투성이의 의심들!'에 다가서고 있지 않은가. 시인들은 끊임없이 그 황무지를 새롭게 일구고 기름지게 가꿀 소명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이하석 시인은 시집 "녹"에서 그 황량함 속의 푸르름을 길어올리기도 한다. '물에 더러운 손을 씻다가/맑은 정신의 외오돌아선 꽃망울이 내다보는 또렷한 시선에/멈칫한다'('수생-어라연꽃')다. '그것은 가장 낮은 세상의 땅의/그 몰인정한 넓이와 깊이에 전신을 뉘어/가까스로 제 푸른 꿈을 떠받친다'('야적')는 메시지는 희망의 조짐 건져올리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과연 언제쯤 환해질 수 있을 것인가. 철없는 아이처럼 그런 내일이 기다려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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