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마사코와 이남덕

입력 2001-06-11 14:08:00

이중섭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화가다. 방황과 고독, 술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의 생애는 고단했지만 그림 때문에 그는 행복했다. 중섭의 일생을 돌이켜볼때 두 사람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파리유학을 한 중학시절 미술선생님은 중섭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는 중섭의 재능을 이끌어냈고, 화가의 길을 걷도록 만든 사람이다. 도쿄국제미술대학 유학시절 중섭은 또 한 사람을 만난다. 학교 친구인 일본여인 '마사코'. 그림을 사고 싶다는 그녀의 제의에 중섭은 너무나 기뻤다.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여자이었기에 중섭은 소가 그려진 그림 한점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일본 제일의 재벌기업인 미쓰이(三井)의 계열회사 사장 외동딸인 마사코. 그녀는 중섭을 흠모했다.

1943년 귀국. 많은 예술가들과 교우하면서 그림에 몰두한 중섭은 도쿄에 두고 온 마사코와 편지를 통해 사랑을 키워갔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마사코가 현해탄을 건너왔다. 부산에서의 뜨거운 재회. 마사코의 순애보 앞에 완고하기로 소문난 중섭의 형도 감탄했다. 개명시킨다는 조건을 달고 결혼을 승락했다. 중섭이 지어준 마사코의 한국 이름은 '이남덕'. 그녀는 한국여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생활했다. 중섭의 예술은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고, 여러 학교로부터 미술선생으로 부임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모두 거절했다.

6.25. 부산으로 피난온 중섭은 추위와 허기, 피곤함에 지쳐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한없는 무기력과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서 제주도로 떠났지만 가난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시 부산행. 그러나 그에게는 가족을 먹여 살릴 생활 능력도 없었고, 가족을 더 이상 고생시킬 염치도 없었다. 중섭은 눈물과 함께 두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일본으로 떠나 보낸다. 다시 만나 행복한 삶을 기약하면서…. 하지만 중섭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통스럽고 힘든 세월 속에서도 화가로서 열정적으로 살다간 중섭의 삶에서 느낀 바가 많다. 가난과 고독, 병마에 쫓기면서도 창작에 혼신의 정열을 쏟은 중섭의 삶.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한지공예가.대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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