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친 한국땅의 여섯배나 되는 만주땅에서 아직도 오천년 역사의 멎은 말발굽 흔적이 남아있다. 인걸은 간데 없어도 산천은 그대로라는 말 다름아닌 것이다.그곳에 가면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뿐만 아니라 목단강 그리고 만주땅 최북단으로 러시아땅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7천리 흑룡강이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1600년이란 세월을 묻어 지내다가 일본인에 의해 먼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거대한 광개토대왕비가 그러하거니와 우리 대구가 본향인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의 서예가로 알려진 서동(徐同)의 붓글씨도 조선민족 문화단체.출판사.언론기관의 입간판으로 웅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구려가 고려로 오늘날에 와서는 한국을 지칭하는 코리아로 자리매김된 만큼 만주땅은 고대 단군조선 이래로 우리 민족의 본거지라는 건 익히 다아는 사실이다.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받들어온 것과 무관하지 않으나 중국측에서는 지명상으로도 장백산으로 불리우는 한낱 하나의 관광지로 여기는게 그들일 따름이다압록강 하류인 신의주 맞은편 중국 항구도시인 단동에서 시외버스로 산넘고 물건너 거듭거듭 여섯시간 정도 점심마저 거르고 가다보면 환인이라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푸른 강물이 쪽빛 옥양목을 펼쳐놓은 듯 일렁이는 눈부신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 강이 삼국유사에 보이는 비류수라는 걸 뒤늦게서야 알고 그만 까무라칠뻔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너머 병풍처럼 우뚝 솟은 깎아지른 절벽 그 산정(山頂)의 위용은 어디에 비길까.
바로 오녀산성(五女山城)이다. 역사는 변천을 거듭하여 중국인민 다섯 여장군이 그 성을 사수하다 장렬한 죽음을 감행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알고보면 주몽이 북부여땅(지금의 길림)을 탈출하여 엄리대수를 건너 비류수를 따라서 정착하여 22세때 세운 고구려 도읍이 평지가 아닌 깎아지른 그 산정인데 천년풍우에 흔적없이 씻겨간 듯 이제는 늠름한 중화인민공화국 역사현장으로 뒤바뀌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집안땅에 있는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시조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홀승골성 서성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도 똑같은 기록이 나온다. 이걸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세계적 명칭인 코리아,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더 거슬러 오르면 고구려 그 발생근원지이고 보면 그게 남의 땅이 돼버렸으니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린 셈이 되며 족보마저 뒤바뀐 경우가 그것이다.
일찌기 해모수가 하늘에서 오룡거를 타고 내려왔다는 신령스런 산이기도 하거니와 한 핏줄인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땅인 고구려 도읍지가 잊혀져 가고 있다는 사실 말고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만을 가지고 노래해 왔는가 하면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제사에 쓸 돼지가 그만 달아나는 바람에 그 돼지 잡으러 뒤따라가다 만난 집안땅이 비옥하다고 해 도읍을 다시 옮긴 집안땅만 밟고 관광지처럼 여겨오는 오늘날의 현실이고 보면 씁쓸한 입맛 더해지니까 말이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아직은 우리의 것을 되찾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마음속에는 항용 담아두어야 할 일이거늘, 지명은 중국식인 오녀산성으로 굳어져 왔지만 비류수(지금의 혼강)와 함께 우리 민족 코리아의 발상지라는 것쯤 알고 지나가는 것이 덜 쓸쓸하지 않을는지!
온 만주땅을 굽어보며 대호령하듯 우뚝 솟아있는 오녀산성이야말로 백두산보다 더 위풍당당하게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더라는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