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 명문고 육성 노력

입력 2001-06-08 14:53:00

농업을 살리려면 농민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려면 농촌 학교를 살려라!…. 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에 '명문고 만들기'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그래야 자녀 교육을 위한 탈농이나마 막을 수 있기 때문.

이런 시도에는 교육 당국도 나섰고 주민들 스스로도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 어떻게 돼 가고 있을까?

◇왜 명문 학교가 필요한가? = 봉화에서는 지난해 중학교 졸업생 556명 중 무려 306명이 안동·영주 등지의 고교로 진학했다. 군내 고교에 진학한 학생·학부모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각하다.

울릉의 초교생은 758명이지만 중학생은 346명, 고교생은 162명에 불과하다. 육지로 유학 떠났기 때문. 대구에 인접한 경산의 초교 입학생은 3천여명이지만, 졸업생은 2천여명씩밖에 되지 않는다. 좋은 대학 보내려면 대구시내 고등학교에 진학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초교 5학년쯤 때 대구로 전학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빚은 결과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만큼 교육 당국도 지역별 명문고 육성에 힘을 쏟아 왔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 경북 도교육청은 1997년에 전국 처음으로 '영양고'를 '농촌 중심학교'로 지정했다. 학생 기숙사, 교사 사택 등을 만들고 교육 기자재를 확충, 대도시 학교 못잖은 교육환경을 만들려는 것. 성주 초전중은 '21세기 창의학교'라는 슬로건 아래 수십억원을 투자해 육성했다.

안동교육청은 1999년부터 안동 풍천중과 인근 풍천·신성·풍서초교 등 4개교를 모아 초교-중학교를 일원화하는 '통합 학교'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 등 여러가지로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영천에서는 1995년부터 국회의원·기관장·유지 등 200여명이 모여 '대창고'를 명문고로 만들려 시도했다.

◇쉽잖은 명문학교 만들기 = 그러나 적잖은 시도들이 좌절되고 있다.

공공 투자의 경우, 일부 지역에 돈이 집중 투자되자 다른 지역이 반발, 결국엔 조금씩 돈을 나눠쓰는 분산 투자 형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앞에서 말한 안동의 시도는 교육부도 수용해 29억원을 지원키로 했으나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일부 주민들이 지역 정서와 연고권 상실 등을 문제삼아 반대하기 때문. 영천에서의 시도는 사립인 학교측 반발로 무산됐다.

울릉종고 총동창회는 섬에 하나뿐인 이 고교를 명문화 시키려고 작년부터 장학회 기금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성과는 부진하다. 경산에서는 사립으로 최첨단 새한 중고교를 만들고, 공립인 경산중고를 키워 경쟁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했지만 새한 건립이 모기업 워크아웃으로 중단됐다. 작년 9월 현대식 건물을 지어 이전한 경산중고교에도 학부모들이 기대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기대되는 사례들 = 의성 안계 지역 학부모·주민·동창회·학교 등 관계자들은 지난해 8월 중고교 통합협의회를 결성, 삼성중·안계중·안계여중을 통합하고, 안계종고·안계여고도 하나로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민 80%가 지지해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도교육청에 35억원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우종환 협의회장은 "도교육청이 긍정적이어서 조만간 통합 문제를 마무리 한 뒤 내년 3월 개교를 이뤄내겠다"고 했다.

구미 경우, 공립인 금오고가 올해 개교하면서 기존 구미고·구미여고 등과 명문 다툼을 벌일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역내 중학교 졸업생 3천여명 중 500명 이상이 외지 고교로 빠져 나가던 문제도 거의 해결될 전망. 도교육청이 최신 시설에 우수 교사들을 우선 배치함에 따라 금오고 신입생 중 98%가 구미시내 중3 우수생(상위 20%)으로 메워질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고 관계자가 말했다.

그 외 지역별 특성화 고교의 성과도 주목된다. 성주통합고, 청도전자고, 경주디자인고, 경산자동차고, 해평 생활과학고, 안동 자연과학고 등은 실업계고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 다른 지역 학생까지 입학해 올 정도가 됨으로써 해묵은 신입생 미달 상황도 완전히 극복했다.

◇무엇이 필요할까? = 명문 학교 육성 성패는 주민들이 뜻을 어떻게 모으고 추진하느냐에 달려 있는듯 보인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역에서 한 목소리로 대책을 요구한다면 적극 지원할 방침이지만, 의견이 분산될 경우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대학 입학과 관련해 배려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농어촌 특례입학 폭을 대폭 키우고, 실업계고 및 농·어민 관련 특별전형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

여기다 우수 교사들을 시·군 거점학교에 우선 배치할 수 있도록 인사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 같이 오지·벽지 소규모 학교 근무에만 가산점을 줘서는 거점 명문교 육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교원 인사 규정상 읍·면 학교에 근무하면 근무 가산점을 받지만, 시 단위 고교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대입 지도에 골치를 앓아야 하면서도 그런 배려가 없어 승진·전보 등에서 오히려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벽지 학교는 도로망 확충, 자가용 보편화 등으로 출퇴근 여건이 중소 도시에 못잖으면서 가산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경 한 고교 관계자는 "상치 과목, 잡무 등 어려운 점도 있지만 면 단위 중학교가 편하고 유리한 건 사실"이라며, "교장·교감 등이 우수 교사를 전입시키거나 만기 후 유보시키기 위해 인정에 호소도 해 보지만 빠져나가는 교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했다.

이같은 교사난으로 인해 우수 학생 유출을 막기 위해 지역마다 주민, 기관단체 등이 몇년 전부터 공 들이고 있는 명문 학교 육성도 내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 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의 인사 선호 성향 때문에 전통 있는 시 지역 고교들이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며, "농어촌 근무 가산점 규정 확대, 교감 승진제도 개편 등 다각적인 개선책 모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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